2월의 우리고장 현충시설 : 남원 3·1만세운동 발상지 기념탑
2월의 우리고장 현충시설 : 남원 3·1만세운동 발상지 기념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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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2.19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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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원 3·1만세운동 발상지 기념탑

 

  1919년 3월 1일 서울 탑골공원에서 폭발한 만세운동의 거센 물결이 남원에 이른 것은 3월 2일 새벽, 이기원·황석현·황동주 등의 천도교인들에 의해 교구장 유태홍에게 전달된 ‘독립선언서’가 남원의 요소요소에 게시되면서 부터였다.

  당시 덕과면장이던 이석기는 오수보통학교 교사로 재직 중인 조카 이광수를 서울에 보내 3·1운동의 배경과 진행상황을 탐문해오게 하는 한편 각 부락의 구장회의를 소집하고 남원군내 각 면장들에게 보낼 ‘독립만세참가취지서’라는 취지문과 ‘경고 아 동포제군’이라는 격문을 작성하는 등 4월 3일 식수기념일을 기해 만세운동을 벌일 것을 계획하였다.

  4월 3일 이석기의 선창으로 군중들은 독립만세를 외치며 500여 군중이 사매면 헌병주재소로 진출하였다. 같은 시각에 사매면민들도 이에 합류하여 시위 면민은 800여 명이 되었다.

  남원헌병대는 무장하고 군중을 향해 발포하였고, 이석기 면장 등이 체포되고, 면민들은 일단 해산하였다.

  이성기·이두기·이범수·장경서 등은 4월 4일 남원 장날에 다시 궐기할 것을 결의하고 재차 시위 준비에 착수하였다. 4월 4일 남원 시장 안에 수천 명의 군중들이 모여들었고, 오후 2시경 이두기의 만세 선창으로 군중들은 총궐기하였다. 일부 광한루 광장에 모인 군중도 같은 시각에 시위를 벌였다. 이에 증파된 헌병대는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 사격을 가하였다.

  남원3·1만세운동발상지 기념탑은 1919년 만세운동에 참여하여 희생당한 수많은 순국선열을 추모하고 남원에서 최초로 일어난 3·1만세운동을 기념하고자 1998년 건립하였으며, 국가보훈처에서는 2002년 11월 1일 현충시설로 지정하였다.

 전북동부보훈지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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