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단상
봉준호 단상
  • 장상록
  • 승인 2020.02.18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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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펭귄을 처음 본 유럽인이 귀국해 그림을 그려 설명했을 때 펭귄의 존재를 받아들인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인간에겐 상상력이 중요하다. 다만 그 상상력은 존재 범위를 초월할 수 없다. 펭귄의 모습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이유다. 만일 누군가 그리는 외계인의 모습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 인식 범위 내에 있을 뿐이다. 그것은 선천적 시각장애인이 꿀 수 있는 꿈의 형태와 다르지 않다. 하물며 내 빈약한 상상력은 말해 무엇 하겠는가.

 나는 어릴 적 너무도 간절히 미국에 가보고 싶었다. 막연하고 설명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그곳은 천국 아래 존재하는 지상 낙원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다만 유의할 것은 구한말 윤치호가 미국 농가 헛간이 조선의 고급 기와집보다 좋다며 미국을 찬양했던 것과는 다르다. 윤치호는 직접 보고 느낀 소회를 말한 것이었지만 나에겐 가공의 이미지밖에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상 혹은 가공의 이미지, 그러한 인식의 밑바탕을 조성한 것은 바로 미국 영화와 음악이었다. 나는 여전히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뉴욕의 티파니와 테네시를 얘기한다. 오드리 햅번과 ‘테네시 월츠’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내 그러한 기억은 다른 곳에 살고 있는 다른 대상들의 기억 속에 전이되었다. 이제 지구상 누군가에게 그런 간절함의 대상은 대한민국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그토록 와보고 싶어 하는 것은 내가 어린 시절 가졌던 그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 점에서 봉준호와 방탄소년단의 존재는 이제 전 지구적이 되었다. 봉준호가 훗날 세계인들에게 톨스토이와 같은 존재가 된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어 보인다.

  더불어 나는 봉준호의 천재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그에게 놀란 것은 그가 비범한 인물이어서가 아니다.

  봉준호와 같은 386세대인 내게 그가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은 어쩌면 익숙하다. 조금 불편하지만 그 시대의 이념과 정의감의 과잉은 때로 거짓과 위선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았다. 그것은 나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던 영화감독 김기덕의 모습과도 다르지 않다. 무엇인가 특별해야한다는 사고는 종종 공허와 허무로 종결된다. 그런 점에서 봉준호의 특별함은 그가 평범함 속에서 찾아낸 결과물 속에 있다. 평범함을 비범하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천재가 가진 특권이다.

 일배일배부일배(一杯一杯復一杯), 이백(李白)의 시구(詩句) 한 수다. ‘한 잔, 한 잔에 다시 또 한 잔’, 이 구절에 대해 한 전문가는 만일 이백이 아니었다면 참으로 민망한 시구라고 얘기했다. 그의 말대로 이백의 천재성은 이 평범하고 볼품없는 구절을 그 어떤 아름다운 수사구보다 멋지게 만들었다는 데 있다. 그것은 어쩌면 사람 사는 곳에 적용되는 보편적 질서인지 모른다. 특히 문학이 그렇고 영화가 그렇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모조프의 형제들>이나 구로사와 아키라(黒澤明)의 <라쇼몽(羅生門)>에서 느꼈던 감동도 바로 그런 일상의 평범함 속에 도사린 인간의 본질에 대한 통찰에 있다. 온 인류를 사랑할 수 있지만 단 한 사람을 사랑할 수 없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또한 자기 자신에게조차 정직할 수 없는 존재가 인간이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이 모순된 관계가 인간을 자연계의 다른 존재로부터 구분하는 대상이라는 것이다. 이백과 도스토예프스키 그리고 구로사와 아키라가 남긴 정수는 너무도 특별하지 않은 바로 그 존재를 우리 앞에 펼쳐 놓았다는데 있다. 봉준호도 그렇다.

  흥미로운 기사를 봤다. 인도에서 영화 <기생충>에 대해 자신들 작품을 표절했다고 주장한다는 내용이다. 적어도 기사에 나온 내용에 한정한다면 말 그대로 해프닝이다.

  수많은 한국 영화를 그대로 표절하는 인도가 한국 영화에 대해 표절 운운하는 것은 그 자체로 신선(?)하다. 하지만 그들 주장대로라면 사랑을 주재로 한 모든 저작권은 원초적으로 제일 처음 사랑을 말한 당사자에게 귀속되어야 한다.

  빈부격차에 대해 누구나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봉준호가 보여준 것은 누구도 하지 못한 창작의 영역이다. 사족, 인도인이여! <베다(Veda)>에 천착하기를.

 장상록<예산군농업기술센터 농촌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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