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대학교 박물관의 여래불적도와 삼존석불
전북대학교 박물관의 여래불적도와 삼존석불
  • 이휘빈 기자
  • 승인 2020.02.17 17: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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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의 유물을 찾아서 7.

 1961년 5월에 문 연 전북대학교박물관(이하 박물관)이 개관한지 60년이 가까워져간다. 옛 마한의 터전이자 조선왕실의 본향인 전라북도의 역사와 문화를 조사·연구·보존·교육함으로써 지역민과 방문객에게 지역문화의 향수를 제공한 박물관은 도내 박물관 중 역사가 깊다. 61년도에 당시 문리과대학 교양과정부(現 예술대 3호관) 3층에 400㎡의 규모로 처음 문을 열었으며, 남원 아영면 일대에서 수집된 가야토기 50여 점을 비롯하여 옹기류, 마구류, 돌칼, 돌도끼를 전시하면서 단출하게 출발하였다. 1979년에 당시 ‘전북대학교 랜드마크’ 였던 중앙도서관 건물로 이전하게 되면서 박물관의 조직체계가 확립되었고, 대학박물관 가운데 가장 많은 고문서 소장기관으로 성장하는 토대가 구축되었다. 이후 건지(乾止)의 기상과 덕진지(德津池)의 조화로움을 담아 박물관 개관 50주년인 2011년에 새 박물관이 개관했다.

 박물관은 4만여 점의 소장품을 보유하고 있다. 이 가운데 여래불적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79호 여래불적도, 전주부지도(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80호), 완주 봉림사지 삼존석불, 금산사도, 그리고 전주향교 소장 완영책판(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04호) 5,058점 등이 대표 유물이다.

 여래불적도는 1812년(순조12) 봄에 경상도 함양군 지리산에 소재하는 안국암(安國庵)에서 대공덕주(大功德主) 겸석(兼碩)이 판각한 것이다. 부처의 발바닥에 경의를 표하면 죄가 사라진다는 믿음에서 유래되었다. 중국 당나라 현장법사가 인도에 갔을 때 돌에 새겨진 부처의 발바닥을 보고 중국에 전했으며, 우리나라에는 중국으로부터 목각판으로 전해졌다고 한다.

 완주군 고산면 삼기리에는 후백제 때 세워진 것으로 알려진 봉림사지가 있다. 이 절에는 본디 삼존석불, 석등, 석탑이 있었는데 석등과 석탑은 일제강점기 때 군산으로 옮겨져 현재 발산리 석등·석탑으로 알려져 있고, 삼존석불은 1977년에 전북대박물관으로 이전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삼존석불은 매우 세밀하게 조각된 불상으로 광배가 있는 본존불과 좌우 협시불로 구성되어 있다. 전라북도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수작(秀作)이다.

 더불어 금산사도는 추사 김정희의 제자인 소치 허련(1808∼1893)의 작품이다. 허련이 전북 지역에 있었을 때는 1860년 53세부터 진도로 귀향하는 1865년까지와 다시 옥구 임피로 올라온 1865년 겨울에서 1867년 5월이다. 50대의 대부분을 전주와 임피에서 보낸 셈인데, 이 시기에 금산사를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19세기 중반의 금산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어, 지금과 차이가 있는 당시의 건축양식과 가람배치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이휘빈 기자

 

 전북대학교 박물관

 전북대학교 박물관은 전라북도의 고대문화, 생활문화, 예술문화, 기록문화, 전통복식 그리고 기증유물로 구성된 상설전시실과 박물관 정원을 활용한 옥외전시 공간으로 구성됐다. 전북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또한 학술강연과 다양한 문화교육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여 지역민들에게 문화체험의 장을 제공하고 있다. 박물관 관람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오전 9시 30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관람가능하다. 정기휴일은 법정공휴일과 개교기념일(10월 15일)이다. 자세한 사항은 홈페이지(https://museum.jbnu.ac.kr/) 및 전화(063-270-3488)를 통해 문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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