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자존시대 연다] <3>장수가야-고총·봉수왕국
[전북 자존시대 연다] <3>장수가야-고총·봉수왕국
  • 이방희·장수=송민섭 기자
  • 승인 2020.02.17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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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1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국정기획자문회의가 정리하고 있는 지방정책 국정과제에 가야사 연구와 복원을 주문했다. 대통령의 주문으로 시작된 가야사 연구는 영호남 화해와 화합을 이루겠다는 국민의 열망을 함께 담아 100대 국정과제중 67번째에 오른다.

이를 필두로 2017년 11월 25일 전북가야 선포와 전북가야탑 제막식, 2017년 12월 8일 ‘전북가야를 선언하다’라는 주제의 국제학술심포지엄과 송하진 전북도지사가 주관한 전북가야 조사·연구 및 전시를 위한 업무협약 등으로 본격적인 발굴과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한국고대사 새 전기 기대

지금까지 가야는 기원전후에서 526년(대가야 멸망)까지 경상도지역 일부에 존재했던 것으로 알려졌으며 그 카테고리안에서 연구가 이뤄진게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고고학적 연구를 통해 전북 동부지역 특히 장수와 남원을 중심으로 가야가 존재했던 것으로 나타내고 있다.

장수를 비롯한 전북 동부지역 가야의 존재는 한국고대사의 한 획을 그을 큰 사건으로 앞으로의 학술연구를 통해 역사가 재해석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장수가야가 바로 그곳이다.

곽장근 군산대 교수는 “우리나라 국토를 동서로 갈라놓은 백두대간 산줄기 서쪽에 장수가야가 있다. 금강 발원지 뜬봉샘이 자리하여 수계상으로는 금강 최상류에 속한다.”며 “백두대간 산줄기 서쪽 금강유역으로까지 가야의 영역을 넓힌 가야왕국이 장수가야이다”고 설명했다.

곽 교수는 장수가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체계화한 설명을 하고 있다.

1993년 봄 백두대간 서쪽 진안고원에서 장수가야가 처음으로 세사에 알려졌다. 2003년과 2012년에는 문화재청으로부터 발굴비를 지원받아 장수 삼봉리 가야 고총 발굴조사에 성과를 거두며 2013년에 전라북도 기념물 제128호로 지정됐다. 2016년에는 90여기의 가야 중대형 고총으로 구성된 장수 동촌리 고분군도 전라북도기념물 제132호로 지정됐고 사적 제552호로 지정받았다.

2018년 장수가야 하류계층 분묘유적인 장수 삼고리 3기의 봉토분이 조사됐다. 추가장에 의한 다곽식으로 밝혀진 이 무덤에서 위신재로 알려진 금제이식, 오각형 철제대도를 중심으로 다양한 양식의 토기류가 출토됐다. 가야·백제·신라토기와 영산강유역의 유공광구소호가 섞인 토기류는 삼국시대 토기박물관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는 설명이다.

장수지역에서의 고분군은 240기에 이른다. 가야는 문헌기록이 얼마 남지 않아 수수께끼 왕국으로 불리며 많은 무덤을 남겼으며 가야사는 무덤의 역사라고 칭하는 이유이다.

장수 동촌리 무덤군 이외에도 장계면 백화산 무덤군, 천천면 삼고리 무덤군, 장수읍 노하리 무덤군, 장계면 화양리 고총 등이 손꼽히고 있다.

▲봉수 쌓고 긴급 상황 알리다

봉수는 주변의 긴급한 소식을 중앙으로 전달하는 통신시설로 봉수의 집결지가 중요하다. 전북 동부지역에 88개소의 고대봉수가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장수군(21개소)를 비롯하여 남원시, 진안군, 무주군, 완주군, 임실군, 충남 금산군에 걸쳐 확인된다. 봉수의 최종 집결지가 장수군으로 확인되었으며 가야의 정치세력이 장수에 있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중요 유적이다. 가야의 정치체중 하나인 반파(일본서기에서 가야계 소국)는 기문과 대사를 두고 백제와 전쟁을 했고 이 과정에서 봉수를 운영했던 것으로 기록되었다.

△봉수정=장수군 번암면 노단리와 남원시 아영면 성리를 경계로 왕래했던 큰 고갯길인 치재가 자리하고 있는 정자이다.

△영취산봉수=백두대간의 고봉인 영취산 정상부(1075.6m)에 봉수가 자리한다. 2013년 발굴조사를 통해 기초부로 추정되는 단시설과 석재로 축조된 방호벽이 확인되었다. 조사과정에서 장수지역 가야고분에서 확인된 토기와 흡사한 토기편들이 출토되었다.

△삼봉리 봉수=장계면 삼봉리에 자리한 백화산의 북쪽지류 정상부에 위치한다. 먼저 조사된 영취산봉수, 번암봉화산 봉수야 비슷한 양상을 보이며 암반층을 인위적으로 다듬은 흔적이 확인되었다. 이는 최근 전북 동부지역에서 확인된 삼국시대 봉수의 축조기법과 매우 유사하다. 유적내에서 가야토기편이 출토되었고 이후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골단지(화장묘), 다연(차를 가는 도구)등이 확인되었다.

△봉화산 봉수=번암면 동화리 봉화산(919.8m) 정상부에 위치한다. 2013년 시굴조사를 통해 자연암반층을 깍아내고 석재를 이용한 시설이 확인되었다.

▲철을 생산해 전국에 보급하다

철생산 유적은 원료(철광석 등), 연료(나무), 수원(물), 작업공간, 유통망이 복합적으로 고려된 곳에 위치하기 마련이다. 장수일원에는 백두대간을 따라 남북으로 40km에 걸쳐 60개소의 철생산 관련 유적지가 자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수 대적골 철생산유적=백두대간 속 철생산유적 중 유일하게 발굴조사가 진행된 곳으로 단연 으뜸으로 꼽힌다. 유적은 총길이 2km이며 제련로, 건물지 용해, 주조시설 등이 확인되었다.

△장수 지지계곡 철생산유적=번암면 지지리 일원에 자리한 계곡부에 위치하고 있는 곳으로 지표조사를 통해 확인된 유적으로 총 10개소에 걸쳐 분포하고 있다. 이곳에는 철생산유적관 관련이 깊은 슬래그(쇠똥)가 산재하고 있다.

△장수 토옥동계곡 철생산유적=계북면 양악리 토옥동 계곡에 3개소의 철 생산유적이 자리하고 있다. 토옥동 계곡 내 슬래그가 많이 확인되는 곳이 지추골인데 그 위쪽인 월성치 서북쪽 기슭 골짜기에 철 생산유적이 자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장수 비룡리 제철유적=천천면 와룡휴양림의 정상부에 사방댐이 조성되어 있는데 사방댐의 서쪽에 위치한 골짜기를 따라 200m가량 떨어진곳에 철생산유적이 있다. 30m내외의 평탄지에 슬래그가 쌓아있으며 그 깊이는 5m이상으로 추정된다.

▲주요길목에 쌓은 산성

장수군은 백두대간과 금남호남정맥의 산줄기가 자연경계를 이룬다. 이들 산줄기의 주요 고갯마루나 교통로가 분기되는 곳을 조망하기 위해 산성이 자리하고 있다.

△장수 침령산성=장계분지에서 가장 큰 고갯길인 방아재의 남쪽 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둘레가 497m내외로 장수군에 자리한 산성중 가장 큰 규모이다. 4차례의 발굴조사를 통해 호남지방 최대규모의 원형집수정을 포함한 집수시설 3개소와, 건물지, 문지 등이 확인되었으며 현재는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75호로 지정·관리되고 있다.

△장수 합미산성=장수와 임실을 잇는 자고개에서 방어가 유리한 팔공산 자락에 위치, 둘레 392m의 석성이며 2개의 문지와 3개소의 치가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3차례 발굴조사를 통해 집수시설 3개소 배수로, 건물지 등이 확인되었으며 현재의 모습은 후백제시대 개축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삼국시대 기와편 목제등이 출토되었다. 전라북도 기념물 제75호로 지정·관리되고 있다.

△장수 거녕성(봉서리산성)=장수군 산서면과 남원시 덕과면 및 보절면의 경계를 이루는 성산(367m) 정상부를 감싸고 있다. 1차례 시굴조사를 통해 1개소의 문지와 2개소의 치, 집수시설이 확인되었다. 시굴조사에서 삼국에서 후백제까지의 유물이 출토되었으며 문헌기록상 거사물정이라는 행정치소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방희·장수=송민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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