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월산지구전투의 영웅 박노규 준장
일월산지구전투의 영웅 박노규 준장
  • 주영생
  • 승인 2020.02.17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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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7월 육군 제6사단은 문경지구로 철수하여 이화령일대에서 북한군 제1사단의 침공을 저지하고 있었다.

문경방어에 임한지 이틀째인 7월 14일 04시 30분경 북한군은 짙은 안개를 틈타 공격을 개시, 1개 연대규모의 병력으로 각종 포병의 지원 아래 제2대대와 제3대대의 진지로 돌격을 감행하여 이화령을 일격에 돌파하려 하였다.

이 무렵 우리군 이화령 관측소에서는 전방을 관측하였으나 짙은 안개로 진지를 확인할 수 없고 제2대대와 제3대대는 통신마저 두절되어 전황을 파악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후 08시경 안개가 걷히면서 북쪽능선을 관측하자 진지를 사수할 것으로 믿었던 제2대대와 제3대대 병력이 후퇴하고 있었다.

동쪽능선을 사수하고 있던 제1대대장 박노규 중령은 연대장 함병선 대령으로부터 633고지를 고지를 탈환하라는 명령을 받고 3번 도로의 동쪽능선을 따라 돌진하면서 적을 역습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633고지에서 혈투를 벌이고 있던 제2대대는 적의 후퇴에 대한 차단진지가 되어 제1대대의 역습 대열에 가세하는 양상으로 변모, 12시 40분경에는 연풍까지 탈환하여 작전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1951년 경상북도의 산악지대에는 북진중인 아군에 의해 퇴로가 차단된 북한군 제10사단이 산중의 공비와 합세하여 후방치안을 교란하고 군의 주보급로를 차단하고자 하였다.

1951년 2월 28일 청송 방면의 북한군 제10사단이 북상중이라는 정보를 입수한 제2사단장 함병선 준장의 명령으로 연대장 박노규 대령의 제2사단 제31연대는 일월산 남서쪽의 장갈령을 차단하여 3월 1일 새벽에 북상중인 적 1,500여명을 기습공격하여 북한군에 많은 피해를 주었다.

1951년 3월 3일 연대를 지휘하던 박노규 대령은 경북 봉화군 소천면 일월산 일대에서 아군 보급로 확보에 주력하던 중 적이 압도적인 병력으로 아군 진지를 돌파하려하자 한 손에 권총을 빼 들고 진두지휘하여 장병들의 사기를 진작시켰다.

그러나 박노규 대령이 적진으로 돌진하는 순간 적의 흉탄이 그의 복부를 관통하고 3발의 흉탄이 손과 복부에 명중해 현장에서 전사하였다.

진정한 용기와 숭고한 인류애를 지녔던 지휘관 박노규는 이화령전투에서 전사한 김용하 대위를 발견하고 직접 시신을 업고 싸우며 후퇴하는가하면, 어용산전투에서는 적군의 시체 1,000여구를 모두 묻어주었다. 여러 전투에서의 빼어난 성과보다도 더욱 빛나는 면모는 바로 이런 인류애일 것이다. 정부는 1951년 4월 27일 태극무공훈장과 동시에 육군 준장으로 추서하였다.

6·25전쟁이 일어난 지 어느덧 70년이다.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을 수 있도록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켜낸 그 날의 역사를 잊지 않고 보존해 후세에 계승하는 것이 진정한 보훈일 것이다.

 
주영생 전북동부보훈지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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