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에서 온 손님, 을의 반란 펭수
남극에서 온 손님, 을의 반란 펭수
  • 김정수
  • 승인 2020.02.16 13: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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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연말 트로트의 열풍을 몰고 온 송가인과 세계적인 그룹 비틀즈에 대적하는 방탄소년단(BTS)를 누르고 방송 연예분야 올해의 인물에‘펭수’가 선정됐다.

 지난 3월 혜성처럼 등장한 펭수는 남극 펭에 빼어날 수(秀)를 쓰는 올해 나이 10살로 슈퍼스타를 넘어 대우주스타가 되기 위해 남극에서 헤엄쳐온 210센티의 자이언트 펭귄이다. 방송국 소품실 한 구석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EBS 연습생에 불과한 펭귄에 열광하는 사람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어린아이들뿐만 아니라 20대를 넘어 50대에 이르는 성인들이다.

 이런 성인들을 10대의 전유물이던 덕후의 세계로 이끈 것은 인형 탈을 쓴 단순한 펭귄캐릭터이다. 한국의 기성세대들이 펭수에 열광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거대한 정글 같은 사회의 수직적 질서가 아닌 수평적 의식을 가지고 있는 직장인들에게 카타르시스를 통한 통쾌한 대리만족감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동안 가졌던 고정관념을 무참히 깨뜨리는 펭수의 언행들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겪었을‘을(乙)’로써의 서러움과 부당함을 말끔히 씻어준다. 이것이 펭수가 직통령(직장인들의 대통령)이라 불리 우는 이유이다.

 오디션 심사위원이 합격 여부를 차후에 연락해준다고 하자“지금 당장 말해주세요. 안되면 KBS나 MBC 갈래요”라던가, 일개 연습생에 불과한 직원이 공개적으로 하늘같은 사장님께‘사장님! 밥 한 끼 합시다.’라고 말할 수 있는 모습은 그야 말로 을의 통쾌한 반란이라 할 수 있다.

 회사가 전쟁터라면 회사 밖은 지옥이라던 말처럼 전쟁터와 지옥을 오가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사회가 기대하는 어른 역할에 지쳐버린 우리 어른들의 모습은 이를 역설적으로 우리가 정작 현실에서는 위로받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또 헬조선에서 취업난을 겪고 있는 20~30대와 전쟁 같은 한국사회 직장인들의 힘든 삶의 아우성 SOS이지 않을까?

 수직적인 사회에 수평 문화를 재촉하는 펭수의 행동들로 인해 기성의 권위와 서열이 무너지고 복잡한 의사 결정 단계를 줄여 신속하게 결정을 내리는 시스템을 갖추는 수평적 조직 문화는 우리가 지향해야 할 미래사회의 필수조건일 것이다.

 앞으로 다가올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직장인 아닌 직업인의 개념이 등장하는데 EBS 소속임에도 타 방송사를 자기네 집 안방 드나들 듯 종횡무진 하는 모습은 경계가 분명한 전통적인 직장 개념에서는 불가능한 일을 해냄으로써 새로운 직업인 상(像)을 보여주고 있다.

 어린아이다운 천진한 말투로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며 진심을 말하는 모습에서 차츰 하얘지는 머리카락과 함께 잊고 있었던 동심을 재발견하고 동년배의 감수성을 이끌어 낸 펭귄에게 우리 모두가 큰 위로를 받는 것이 펭수 열풍의 이유가 아닐까.

  오늘도 직장생활에서 순응을 강요받는 우리의 을(乙)들에게 남극에서 봄바람을 몰고 온 손님 펭수의 말처럼“힘내라고 하면 힘이 납니까? 힘내라는 말보다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라고 위로의 말을 건내고 싶다.

 올해에는 사랑하는 가족과 주위 사람들에게 솔직한 마음을 전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는 존재가 되었으면 좋겠다. 펭수가 우리에게 그랬던 것처럼 오늘 나도 누군가에게 희망전도사가 되어 주고 싶다.

 김정수<전북도의회 농산업경제위원회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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