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진박물관의 조선태조어진과 일월오봉도 병풍, 선연
어진박물관의 조선태조어진과 일월오봉도 병풍, 선연
  • 이휘빈 기자
  • 승인 2020.02.10 17: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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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의 유물을 찾아서. 6.

 어진박물관이 위치한 경기전은 조선 건국과 함께 영흥, 함흥 일원과 더불어 새 왕조의 발상지였다. 조선왕조는 이를 기념해 1410년(태종 10년)에 경기전을 건립했다. 경기전은 조선왕조의 기틀이요, 왕조가 일어난 경사로운 터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현재 있는 경기전은 1614년(광해군 6년)에 중건됐다. 임진왜란 때 수호되었던 전주성은 1597년 정유재란 때 왜군에 의해 점령되었다. 이때 경기전도 함께 불타 사라졌지만 봉안되었던 태조어진은 임란 때 정읍 내장산으로 이안되어 1년여 수호되었으며, 이후 묘향산 보현사에 이안되었다가 전란이 끝난 후 1614년 경기전이 중건될 때 다시 환안됐다.

 국보 317호인 ‘조선태조어진’이 전주 경기전에 처음 봉안 된 것은 1410년이다. 1872년(고종 9년) 어진이 낡아서 물에 씻어 묻고(洗草埋安), 한양 영희전의 태조 어진을 모사해 봉안했다. 조중묵을 비롯해 10인의 화사가 참여하였으며 한 달이 소요됐다. 영희전 태조어진은 이전에 경기전 태조어진을 모사한 것이다. 1872년 모사한 이 태조 어진이 현존하는 유일한 태조의 초상이다.

 태조어진은 건국자의 권위와 위엄이 돋보이는 어진으로 익선관을 쓰고 청룡포를 입었으며, 각대를 차고 흑화를 신은 전신상이다. 익선관, 곤룡포, 각대, 흑화는 평상시 집무복 형태이다. 조선시대 임금들이 붉은 곤룡포를 입었는데 태조는 푸른 곤룡포를 입은 것이 특이하다. 세종 때 명나라가 홍룡포를 내려 주어 입게 되었다고 하며, 숙종 때 영부사 김수흥은 고려시대 청색을 숭상했고, 태조 연간은 고려와 멀지 않기 때문에 더러는 청색 곤의를 만들었을 것이라는 의견을 개진한 바 있다.

 태조 어진은 용안의 정면을 그린 정면상이다. 정면상은 그리기는 어렵지만 권위와 위엄을 나타내는 데 적격이다. 눈에는 정기가 가득 차 있고, 풍채가 좋으며 위풍당당하다. 눈과 입은 작고, 귀는 크며, 오른쪽 눈썹 위에 사마귀가 있다. 기록에 의하면 태조는 키가 귀가 크고, 몸이 반듯하며, 풍채가 좋다고 하였다.

 또한 곤룡포 윤곽선이 상당히 각지게 처리됐고 안에 입은 포의 깃이 목 위로 바짝 올라와 있어서 경건하고 엄숙한 느낌이다. 손은 두 손을 모아 포개어 잡은 공수상으로 옷에 가려져 밖으로 드러나 있지 않다. 전체적으로 비단에 한국 초상화의 전통 기법인, 화면의 뒷면에서 안료를 칠하는 배채법으로 그린 것으로 색감이 은은하고 깊다.

 어진 위쪽 우측 표제에 ‘태조대왕어용’이라 하고 그 아래에 ‘소자복지 9년 임신 이모’라고 하여 이 어진이 태조의 어진이고 고종 9년에 그렸다고 밝혀 놓고 있다. 그 옆에 붉은색 바탕에 ‘태조 고황제어진’이라고 또 하나의 표제를 붙여 놓은 것은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태조임금을 태조 고황제로 추존 후 새로 붙인 것이다. 표제를 화본에 직접 쓰지 않고 따로 써서 붙인 것은 귀한 분이기 때문이다.

 어진박물관은 평상시엔 모사본 태조어진(권오창 作, 2010)을 전시하고, 국보로 지정된 진본 태조어진은 특정 기간에만 공개하고 있다.

 한편 박물관이 소장중인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 224호 ‘경기전 일월오봉도 병풍’은 태조어진 뒤에 펼쳐져 있던 것이다. 1872년(고종 9년) 태조어진을 새로 모사하여 경기전에 봉안할 때 제작한 것으로, 다른 일월오봉도와 달리 특이하게도 산 양편에 폭포 그림이 없다. 어진 뒤에 펼쳐진 일월오봉도 병풍은 경기전의 것이 유일하다.

 일월오봉도는 용상 뒤에 설치하는 그림 병풍으로 왕실의 권위를 상징한다. 해, 달, 산, 소나무, 물은 영원한 생명력의 표상으로써 자손만대 길이 번창하라는 의미와 왕실의 지고한 권위를 상징한다. 해와 달은 왕과 왕비, 파도는 조정을 뜻한다고도 한다.

 또한 박물관에 보관·전시된 가마들은 경기전 창고에 보관되어 있던 가마들을 일부 보수하여 전시해 둔 것이다. 경기전에 남아있던 신연 2개와 향정자 2기 채여 및 가교는 시대를 크게 2개로 분류해 볼 수 있다.

  먼저 신연과 향정자, 가교 각 1기들은 1872년 한양에서 어진을 모사해 경기전에 봉안할 때 사용한 것이며, 이외 신연 및 향정자 1기들은 1771년(영조47) 조경묘에 왕실의 시조와 시조비의 위패를 봉안을 할 때 사용한 것으로 보여지고 있다.

  보수 전 경기전 창고에 보관되어 있던 가마들은 많이 낡아 부서진 부분도 있긴 했지만 기본 가마의 형태가 많이 남아있었다. 특이한 점은 운거축이 달린 신연이다. 운거축이 달린 가마는 중앙에서도 볼 수 없는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또한 나머지 가마들도 각각 가마채나 지붕 양( 활이나 무지개 같이 한가운데가 높고 길게 굽은 형상, 또는 그렇게 만든 천장이나 지붕, 궁륭) 골격으로 이루어진 나무에 닥지나 천으로 싸서 목재의 틀림이나 부러짐을 보완한 것이 보여진다. 가마들의 문양도 신연은 용 문양, 가교와 채여는 연화도 등 다양한 문양들이 그려져 있어 가마 연구에 귀한 자료가 되고 있다.

 이휘빈 기자

 

 어진박물관

 전주한옥마을 경기전 후원에 위치한 어진박물관은 조선태조어진을 안전하게 보존하고 경기전의 역사를 널리 알리기 위해 2010년 11월 개관하였다. 지상1층 지하1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지상에는 태조어진을 모신 태조어진실, 지하에는 어진실, 역사실, 가마실, 기획전시실 등이 있다. 지하 어진실에는 세종, 영조, 정조, 철종, 고종, 순종 여섯 분의 어진이 모셔져 있고, 가마실에는 태조어진 봉안 및 조경묘 위패봉안 시 쓰였던 신연, 향정자, 채여, 가교 등 가마가 전시되어 있다.

 어진박물관은 오전 9시에 개관하며 평소엔 오후 7시까지 운영되지만 동절기(11월-2월)는 오후 6시, 하절기(6월-8월)는 오후 8시 까지 운영된다. 매년 1월1일을 제외하곤 연중무휴로 운영되며, 관람 및 자세한 문의는 전화(063-231-0090~0190)를 통해 문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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