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 전북 청년의 등을 누가 떠미는가
1만 전북 청년의 등을 누가 떠미는가
  • 김창곤
  • 승인 2020.02.10 15: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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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년 전 쓰레기를 이제 처리합니다.” 전주 삼천 하류 둔치에 울타리가 둘러지더니 대형 돔이 섰다. 축구장 절반쯤 면적에 높이 20m인 천막이다. 그 옆엔 쓰레기와 흙이 언덕을 이룬다. 포클레인이 퍼올린 이 쓰레기 내력은 전주시도 못 찾는다. 30년 전쯤 6,000t가량 묻힌 걸로 어림한다. 세월은 쓰레기 냄새까지 표백했다. 돔 안에서 가연(可燃)-비가연 쓰레기로 선별된다. 흙은 다시 매립된다. 냇가는 여름까지 옛 맹꽁이 놀이터로 돌아간다.

 30여년 전 삼천은 들에 물을 적시는 한적한 시내였다. 전주 시가를 서부로 넓힐 때 첫 과제가 서신-중화산동 곳곳에 묻힌 쓰레기를 치우는 일이었다. 필자 아파트터도 쓰레기 산이었다. 매립장을 못 찾던 시가 논을 빌려 3년간 임시로 쌓은 쓰레기가 70만t이었다. 쓰레기에 내린 비는 고스란히 전주천-삼천으로 흘렀다. 여름이면 해충이 들끓고 악취가 번졌다. 이 쓰레기를 치운 건 야적을 끝내고 10년 만인 2004년이었다.

 전주 첫 위생 매립장이 호동골에 들어서고 쓰레기 종량제와 분리수거가 시행된 게 1995년이었다. 먹고 살만해진 그즈음 국민 1인당 하루 쓰레기 배출량이 1.33㎏에 이르렀다. 산업화 이전 마을에선 쓰레기가 나오지 않았다. 똥까지 순환돼 대지로 돌아갔다. 삼천 생태하천 복원을 끝낼 이번 사업에 43억원이 든다. 님비(NIMBY)에 바친 세금이다.

 30년 전 쓰레기는 쉽게 찾지만, 정책 과오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35사단 이전’만 해도 평가가 엇갈린다. 시는 전라선 외곽의 부대를 ‘기피 시설’로 내몰았다. 북부 시가지 발전을 가로막는다는 이유였다. 정치인-언론-시민단체가 앞장섰다. 그곳 장교와 부사관, 사병 등 2,000명과 가족 모두 시민이었다. 그들도 근거리 병원과 마트, 유치원이 좋았다. 10년째 인구 65만인 전주는 지금 ‘시가지 광역화’보다 ‘구도심 살리기’가 절박하다.

 누구나 잘못과 허물이 있다. 오래 살수록 허물은 많아진다. 큰 과오는 못보고 작은 실수에 괴로워할 뿐이다. 가족은 내 책임이지만 나라 앞날은 누가 맡는가. 20세기 후반 많은 나라가 ‘민주주의’ 염원을 이뤘으나 대부분 위기를 맞았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2007~8년 국제금융위기 후 12년간 민주주의 지수가 오른 나라가 27곳인데 반해 내려간 국가는 89곳에 이른다고 보고했다.

 신형 독재자들은 ‘국민의 뜻’을 입에 달고 산다. ‘위기’라 말하며 끊임없이 적을 만들어 공격한다. 대중을 동원하고 직접민주주의를 외치는 시대, 언론과 사법은 충실히 권력을 견제하고 균형을 맞추는가. 법의 지배는 지켜지고 있는가. 의회를 두고 ‘공론화위원회’와 ‘사회적 대타협’이 또 필요한가.

 4월이 다가오면서 총선이 낭패를 불러올지 걱정된다. 전북 유권자 다수가 민주당을 절대 지지하며 재집권을 열망한다. 정책을 지지해서라기보다 자유한국당이 미워서다. 집권당은 ‘개혁’과 ‘진보’를 외치지만, 그보다 자칫 권력을 뺏길 수 있다는 공포가 증오의 동력이다. ‘전라도 소외와 차별을 깨자’는 30년 노래가 다시 한(恨)과 분노를 응결시킨다.

 민주당이 전북 총선 예비후보들을 면접하고 있다. 8개 선거구는 경합하고 2곳은 단일 후보다. 도덕성, 정체성 등을 살펴 공천자를 정하거나 경선 후보들을 고른다고 한다. 입지전 스토리나 이미지, 전문성과 정치 능력은 별개다. 도덕성-정체성도 필요조건일 뿐이다. 이 나라 여야 정치인은 나라가 깨져도 제 것은 지켰다. 내가 왜 국회의원을 해야 하는지, 소명과 책무를 또렷이 밝힐 후보가 몇일까. 전·현직 의원으로 과오를 고백할 용기는 있는가. 친기업-친시장, 땀 흘리는 자강(自强), 통찰과 포용 대신 선악 이분법과 진영 논리가 격랑을 이루는 선거다. 청년 1만명이 매년 전북을 떠난다. 이들의 등을 누가 떠미는가.

 김창곤<前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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