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제일문 안의 평화
호남제일문 안의 평화
  • 나영주
  • 승인 2020.02.05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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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을 움직이는 일을 도무지 좋아하지 않아 운동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불혹의 나이를 앞두니 여기저기서 운동을 하라 한다. ‘자전거 어때?’ 아내가 권유했다. 골목길을 자전거로 누비던 어린 시절이 퍼뜩 떠올라서 한 대 사달라고 했다. 그 길로 작년 가을경부터 최근까지 야간 라이딩은 특별하지 않은 취미가 되었다. 천변길을 따라 가다 지루해서 요즈음은 동네 구석구석 밤 마실 나가는 일이 낙이 되어버렸다.

 자전거 라이딩의 풍경은 고즈넉하다. 가끔은 마음에 드는 풍경을 만나면 멈춰서 잠시 바라본다. 동적(動的)인 내가 정적(靜寂)인 풍경에 젖는다. 얼마 전엔 이제는 만성동으로 자리를 옮긴 덕진동 구 법원의 자리를 물끄러미 보기도 하였다. 밤의 풍경은, 법원이 있을 당시에도 그러하였지만, 차갑게 식어 있다. 아무도 없다. 각종 서류를 품에 끼고 종종걸음을 하는 사람, 목에 팻말을 걸고 무언가 시위를 하는 사람, 검은 옷의 변호사들, 무거운 가방을 옮기는 사무원들, 때론 누군가에게 고함을 지르는 사람들. 모두 어둠과 함께 사라졌다. 자신을 향하던 사람들을 기억하는지 모를 옛 법원 건물은 새로운 개발 사업을 적극 추진하겠다는 현수막이 걸린 채 어둠에 젖어 있다.

 서울에서 십수 년을 살다 귀향한 내게 법조 동기들은 묻는다. ‘전주는 어때? 살만해?’. 답변은 항상 비슷하다. 평화롭다. 조용하다. 그래서 사람들이 드세지 않고 온순하다. 큰 사건이나 재해가 없다. 한때의 영광을 품은 옛도시들이 그렇듯이. 전주의 ‘평화로움’의 특징은 무엇일까. 저녁식사 시간이 지나면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 일부 유흥가도 최근의 역병에 대한 우려 때문인지 사람이 없다. 주택가 원룸촌에 불이 켜진 방을 찾기 힘들다. 수십 년간 자영업을 하는 친구는 서울에서 귀향한 내게 이렇게 말했다. ‘전주는 사람이 북적이다가도 다른 구역이 개발되면 거기로 사람이 빠진다’ ‘서울도 그런걸. 압구정 로데오도, 삼청동도, 홍대도, 가로수길도’ ‘아니, 거긴 그래도 다 빠지지 않잖아. 여긴 어느 곳이 새로 개발되면 기존 도심엔 사람이 사라진다’

 요즘엔 사업을 운영하는 의뢰인들이 착수금을 할부로 결제한다. 법적 대응을 할만한 사건도 참고 넘어간다. 공장이나 사업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줄어든다. 공무원, 서비스업자들의 소비도시. 그나마 있던 공장들도 생산을 줄인다는 뉴스를 본다. 가끔 보이는, 아직 서울로 떠나지 않은 젊은이들은 공무원 학원에 있다. 그들은 시인 기형도의 말을 빌리면 톱밥처럼 쓸쓸해 보인다. 신도심에 지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상가들엔 임대 현수막만 나부낀다. 그 옆엔 총선 예비후보자들의 홍보 현수막도 걸려 있다. 얼굴이 익숙하다. 초선의 현역도 다선처럼 지겹게 보이는 착시효과. 현역에 맞서는 후보들도 전에 봤던 사람들이다. 전북의 거점도시도 이러할진대 다른 도시들은 얼마나 평화로울까. 가끔 서울에 재판하러 출장을 갈 때마다 이 복잡한 곳에서 어떻게 살았을까 하다가도, 그 활기가 부럽다. 호남제일문안의 평화와 바꾸고 싶다.

 나영주<법률사무소 신세계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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