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병활동의 가계를 이은, 녹천의진의 지도자 고광덕 선생
의병활동의 가계를 이은, 녹천의진의 지도자 고광덕 선생
  • 공숙자
  • 승인 2020.01.30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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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회특집>
남원독립유공애국지사추모비

 고광덕, 그는 을미의병장으로 명성을 떨친 녹천 고광순(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과는 같은 장흥 고씨 일문이요,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고경명(임진왜란 때 6,000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금산에서 왜적과 싸우다 전사했음)의 후손답게 의병으로서 생애를 마쳤다.

 광복회전라북도지부 자료에 의하면, 고광덕의 본적은 전라북도 남원 구례이고 운동계열은 의병, 포상년도는 1990, 훈격은 애족장으로 명시돼 있다.

 고광덕은 녹천 고광순의 휘하에서 인봉 고제량(1963년 건국훈장 국민장을 추서), 고광훈(1990년 애국장을 추서), 고광채(1990년 애국장을 추서) 등의 고씨 일문과 1907년 1월 24일 창평 저산 분암에서 창의의 기치를 세웠으며 토적격왜의 전략 전술을 세웠다.

 2월에 남원으로 진격했으나 남원 의병 양한규 등이 이미 실패하였기에 남원성 포위전을 벌이다가 퇴각했고, 4월에 능주(지금의 화순군)를 점령하였으나 동복으로 진군하던 중광주 부관군과의 접전에서 패하여 일시 의병들이 흩어지기도 했지만, 그 후 의병을 규합하면서 무기를 개량제조하고 전법을 훈련하며 대규모 거사를 준비하는 중, 군대해산을 강행 당함에 있어서 고광덕을 비롯한 녹천의진의 의사들은 구례 연곡사에 본영을 정하고 부서를 개편했다. 고광덕 고광채 고광석 고광명(1990년 애국장을 추서) 등의 근친들이 유격과 호위를 담당하고, 신덕순을 참모에, 윤영기를 호군에 임명한 것이다.

 광주 일군 수비대의 불의의 내습을 맞아서 군대를 둘로 나누어 하나는 고광덕이 이끌고 나머지는 숭치를 넘어서 상호 응전하도록 작전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왜병들 또한 하동으로부터 양대로 나누어서 밤중에 작은 길로 습격해 오는 바람에 고광순과 고제량이 전사하고 대다수의 대원들이 흩어져서 운봉 함양 순창 정읍 등지로 전전하게 되었으니 그 시절의 참절비절했음을 어떻게 말로써 가히 표현할 수 있으랴 싶어진다.

 그로부터 지도자를 잃은 녹천의진은 해산되고 말았지만, 이들의 선구적인 의병활동이야말로 당시 호남, 경남 일대의 의병활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음은 명약관화한 일이었으리라.

 고광덕 의병부대는 1910년부터 1914년까지 이석용(고종 양위 뒤 전라북도 진안에서 의병을 일으켜 일본군을 쫓아내고 많은 군수 물자를 노획한 다음 김동신의 부대와 합세해 기세를 떨친다. 나중에 남원과 전주 교전에서 패한 그는 순종에게 국가의 백년대계를 상소한 뒤 재기를 도모하던 중 붙잡혀 전주에 수감, 대구로 이송되어 서른여섯 살의 나이로 사형 당했다) 의병대장과 합류하여 남원, 임실 등지에서 마지막까지 적과의 교전을 불사했다.

 고광덕 의병이야말로 도산 안창호 선생이 민족의 정신적 지표로 강조하신 바를 준용하여 참되고 실속 있는 일을 힘써 행하였고 충의와 용감함으로 생애를 관통해온 지행을 일치시킨 표본인 바 마땅히 우러러 괴여야할 선열임이 분명하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면서, 여기 의병 고광덕의 명명백백한 행동지표였으리 싶은, 의병장 이석용의 공판 기록(시기 : 1914년)을 덧붙여 본다.

 

 - 세 번째 물음과 답변.

  “무슨 목적으로 감히 폭도 노릇을 했느냐?”

  “너희 일본 놈들을 배격하기 위한 것이었다.”

 - 다섯 번째 물음과 답변.

  “조선이 일본에 합병된 이래로 천황의 은덕이 망극하여 일반 신민이 모두 다 즐거워하는데 너도 역시 충실한 국민이 되고 싶지 않느냐?”

  “차라리 대한의 개와 닭이 될지언정 네 나라 신하 되기는 원치 않는다.”

 - 여섯 번째 물음과 답변.

  “의병이라 자칭하면서 인명을 살해하고 마을에 불을 놓고 공금을

  강탈하였으니 이 무슨 불법의 행동이냐?”

  “제 나라를 배반하고 일본 놈에게 붙은 자는 부득불 죽이고 집을

  불태울 수밖에 없었으며, 그 공금이라 하는 것은 본시 대한민국 국세다.

  임금이 잃어버린 것을 신하가 찾아 쓰고, 아비가 잃어버린 것을 자식이 찾아 쓰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데 무엇이 불법이란 말이냐?”

 

 공숙자(수필가, 전북여류문학 회장, 전북수필문학 회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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