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영배(戒盈杯)에 새 희망을 담자
계영배(戒盈杯)에 새 희망을 담자
  • 장기요
  • 승인 2020.01.27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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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낳은 건 부모지만 나를 이루게 한 것은 하나의 잔이다’ 조선 최고의 거상 임상옥(1779~1855)의 말이다. 평생 정신적 지주로 삼았다는 이것은 바로 계영배라는 잔이다.

 계영배는 ‘넘침을 경계하는 잔’이라는 뜻으로, 술잔에 7할 이상의 술을 채우면 밑으로 흘러 버린다. 재미있는 것은 7할을 넘어가는 술만 없어지는 게 아니라 술잔의 모든 술이 다 새어버린다는 것이다.

 고서에 의하면 공자(孔子)가 제나라 환공의 사당을 찾았을 때 생전의 환공이 늘 곁에 두고 보면서 과욕을 경계했다는 이 술잔을 본 뒤, 그 뜻을 본받아 항상 곁에 두고 제자들에게 그릇의 의미를 가르쳤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후기의 도공 우명옥이 설백자기(雪白磁器)라는 뛰어난 도자기를 만들어 큰 재물을 모았으나 방탕한 생활로 모든 재물을 탕진하게 되었고, 뒤늦게 자신의 어리석음을 뉘우치며 참회하는 마음을 담아 계영배를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이 잔은 후에 당대의 거상 임상옥의 손에 들어갔고, 그는 이 잔을 가까이 두고 인간의 과욕을 경계하면서 조선 역사상 전무후무한 거상으로 거듭났다. 거부 임상옥의 이야기는 최인호 작가의 장편소설 『상도(商道)』의 모티브가 되었고, 지상파 드라마로도 제작되어 계영배에 대한 내용이 방영되면서 이 술잔이 큰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내 잔을 가득 채우려는 과도한 욕심으로 인해 큰 낭패를 보는 사례는 너무나도 많다.

 수년전 전국을 휩쓸고 지나간 가상화폐 투자 열풍을 기억할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기술로 여겨지는 가상화폐 시장에서 수개월 만에 두세 배의 수익률을 올릴 수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갓 입학한 대학생부터 노년의 어르신까지 투자를 빙자한 투기 광풍이 불었고, 결국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하고야 말았다. 최근 들어 가상화폐 가격이 조금씩 회복세에 있다고 하는데, 이에 현혹되는 투자자가 또 나오지 않을지 우려된다.

 부동산시장 역시 인간의 욕심이 넘실대는 곳이라 할 수 있다. 저금리, 저성장,

 저출산, 고령화라는 동일한 사회현상을 두고 혹자는 부동산가격이 하락할 수밖에 없으니 가지고 있는 집도 팔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어떤 이는 서울의 아파트 실거래가격이 2년 전인 2017년 대비 40.8%가 올랐다는 통계를 제시하며 그래도 믿을 건 부동산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값이 오를지 내릴지는 지나고 보면 알겠지만 대다수 사람들이 동의하는 점은 현재의 아파트 가격이 일부 투기세력에 의해 비정상적으로 크게 올랐고, 큰 거품이 끼어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정부에서 부동산 가격 안정을 위해 각종 규제 정책을 시행하는 것을 알면서도 과도한 기대심리에 편승해 부동산시장을 기웃거리고 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 볼 일이다.

 새해를 맞아 우리 모두는 새로운 희망을 이야기하며 더 나은 내일을 꿈꾼다.

 자신을 채우려는 노력이 적당하다면 아름다운 계영배로 남을 수 있지만, 자신만을 채우려는 욕심이 넘치는 순간 이전에 얻었던 것들마저 모두 잃을 수 있다. 계영배는 이렇게 끝이 없는 인간의 욕심에 대해 경계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지금 나의 잔은 얼마나 차 있는가? 혹 지나친 욕심으로 모두 새어나가 버리지는 않았는지, 조금씩 비워냄이 곧 나를 지키는 일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장기요   NH농협은행 전북본부장

 약력 ▲농협 진안군지부장 ▲농협은행 감사부 경영감사국장 ▲〃 신탁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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