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의 굴곡진 여정
삶과 죽음의 굴곡진 여정
  • 이기전
  • 승인 2020.01.20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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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백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선진국의 사립 뮤지엄에 비해 40여년에 불과한 우리나라의 사립 뮤지엄의 역사는 실로 턱없이 부족하고 짧기만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사립 뮤지엄의 역사를 일궈가는 관장들이 평생을 바쳐 이룩한 가치는 숙연한 마음으로 그 가치를 되새겨 보게 한다.

 요즘 전공 비전공자 가릴 것 없이 문화예술 공간에 우아한 카페 하나 차려 보는 게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기도 하지만 그 이면에는 박물관이나 미술관 간판을 걸고 운영해 가는 관장들은 개인이 직접 유물 또는 작품을 수집하고 전시공간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파란만장한 역정의 기록이 있다. 그 역정의 길이 험난한 길이었지만 결과물을 관람하며 감동해 하는 사람들을 보며 그 여정이 얼마나 아름다운 길이었는가 역설적이고 이율배반적인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어느 뮤지엄의 정문에는 서부영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교수형 밧줄을 걸어둔 것을 본 일이 있다. 주인에게 사연을 물으니 ‘후세에 전할 박물관 목적을 이루지 못하면 죽음 뿐’ 이라는 각오의 조형물이라 하였다.

 강릉에 있는 참소리 축음기 박물관의 관장은 청년시절 집에 불이나 온통 타들어가는데 불길 속을 뛰어들어가 축음기 다섯 대를 구해낸 일, 뉴욕에서 축음기를 사들고 길을 가다 강도를 만나 죽을 뻔한 일, 과 세계에서 단 하나 밖에 없는 아메리칸 포노 그래프를 소장하는 과정에서는 또 강도를 만나 총상을 입고 죽을 고비를 넘겼던 일등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집요한 관장의 수집벽은 축음기 최다 소장자로 기네스북에 올라 있는 전설적인 뮤지엄을 만들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박물관은 ‘무신궁’ ‘울쇠’등 보물급과 소장유물 1만 점을 보유하고 있는 1960년대에 세워진 ‘제주민속박물관’이다.

 ‘산간벽지를 불문하고 사람이 네댓 가구만 살아도 뭔가 얻을 것이 있다’라는 신념으로 민요든 전설이든 조상의 민속 유산들을 수집해온 관장은 제주도 땅 전체를 자신의 문헌이라는 생각으로 저술과 수집을 집요하게 진행했었다.

 제주4.3사태 이후 사라져간 제주의 울부짖음과 가슴 아픈 현실을 넘어서 그들의 문화를 체계화해야겠다는 신념으로 저술과 박물관 설립을 시도하였고 처음 설립한 박물관은 선처를 베풀던 지인으로부터 사기를 당하여 그동안 모아온 유물을 몽땅 매각을 당해 원점에서 다시 시작했던 일도 있었지만, 산간벽지에 박물을 찾아다니며 그는 “탐라섬에서”라는 노래를 불렀다.

 -흰구름 흘러가는 수평선 벗을 삼아 기나긴 그 세월을 하루인 양 살았으니 먼 훗날 자손들만은 나의 삶을 알리라.-

 박물관이 수용되는 죽을 만큼의 고통과 법정소송 등의 곡절 속에서도 꿈을 버리지 않고 제주민속에 대한 조명을 새롭게 이어갔으며 근래에는 평생 몸바쳐 왔던 뮤지엄 운영을 접고 소장품 전체를 제주대학에 기증한 관장의 의지에 광기 어린 집념으로 뮤지엄을 꾸려가는 문화투사들에게 큰 힘이 되고 있다.

 우리 전주에도 한옥마을의 근현대 풍물시장과 남부시장내 교육박물관 등 평생 모아온 유물들을 전시 공간 확보가 어려워 허접한 공간에 쌓아 두고 있거나 유물은 엄청난데 기획과 연출력의 부족으로 관람객들에게 보여줄 기회를 찾지 못하고 있다. 딱 보아도 평생을 수집에 미쳐 그 행복감에 고통도 잊으며 모아온 소중하고 역사적 기록물로서의 가치가 높은 것들 이건만 조상의 영혼이며 현재와 미래를 이어갈 자취들을 보존할 길이 막연하여 안타까울 뿐이다.

 이기전<전주현대미술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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