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보수주의란 무엇인가?
정치적 보수주의란 무엇인가?
  • 김우영
  • 승인 2020.01.19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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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우리는 보수주의의 재정립에 대해 생각할 시점이 된 것 같다. 보수주의를 새로이 생각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 문제로 돌아가야 한다. 문자적 의미에서 보수주의는 어떤 가치를 수호하고자 하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보수주의는 지켜야 할 무엇이 있고, 그 무언가가 위협받고 있을 때, 그러한 태도를 취하게 된다.

 지켜야 할 그 무엇인가는 기본적으로 자신의 생명과 자유, 재산일 수 있다. 이는 필수적이다. 이외에도 지키고자 하는 다른 많은 것이 있다. 자신의 가정과 동료, 지역공동체, 역사와 문화, 나아가 자연환경 등. 보수주의자들은 자주 사회 내 전통과 권위를 강조한다. 그러나 현대 사회의 급격한 변화는 사회 내 전통과 권위의 옹호를 어렵게 한다. 어떤 전통과 권위가 인정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합의가 어려울 뿐 아니라, 정당 근거를 설명하는 것 또한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유주의 사회적 질서 역시 장기적으로는 자생적으로 형성될 어떤 전통과 권위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정치적 이데올로기로서의 보수주의는 영국의 정치사상가 에드먼드 버크에 기원을 두고 있다. 당시 버크가 지키고자 한 정치체제는 명예혁명을 통해서 실현된 영국의 헌정체제였다. 시민의 자유를 위한 노력과 투쟁으로 여러 세대를 거쳐 이룩한 정치제도를 프랑스 혁명을 구실로 무모하게 전면적 개조에 나서서 것에 반대하였다. 버크가 보았을 때, 혁명은 모든 것을 빈터로 만든 뒤 그 위에 이상적 제도를 다시 쌓아올리려는 시도이다. 이는 과격한 것이며, 현재 이룩한 성과마저 무력화시킬 수 있다. 결과하는 것은 끊임없는 숙청과 공포정치, 독재정치였다.

 버크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에서 보수주의는 다음과 같이 이해된다. 우리가 지켜야 하는 것은 역사적 과정을 통해서 실현해온 구체적인 제도와 전통이며, 나아가 개인의 자유와 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질서 있는 점진적인 개혁을 지향해야 한다는 태도이다. 추상적이고 자의적인 과거 이미지에 얽매여, 현실의 역사적 연속성을 간과하고, 목적을 위해 자유주의적 제도를 파괴하고,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것은 결코 보수주의라 말할 수 없다.

 정치적 보수주의가 점진적 개혁만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1980년대 미국의 레이건, 영국의 대처, 일본의 나카소네 정부는 당시 혁명적 변화를 이끌고자 하였다. 정부 개입의 축소, 자유 시장경제의 유지, 보편적 복지의 축소, 개인 자율성의 확대 등을 견인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주의는 일반적으로 점진적 개혁에 방점을 둔다. 진보주의는 추상적 이념에 기초하여 사회의 전면적 개조를 추구한다. 이상주의적이며, 급진적이며, 이성과 체계성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개인의 자유와 민주주의, 개인 복지의 확장이라는 측면에서 과거 사회의 진보를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인간 사회가 무한히 진보할 수 있다는 생각은 이제 한계에 도달한 점이 있다. 앞으로 사회, 정치, 경제적 측면에서 생활조건이 더 나아지리라는 낙관적 전망은 더 이상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 있다. 현대 사회가 계속해서 자유와 민주주의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단언할 수 있는가? 역사는 발전도 있지만, 퇴락과 후퇴의 길을 걷기도 한다. 우리가 장기적으로 이루어 온 개인의 자유와 민주주의 체제를 지키는 일도 대단한 성찰과 노력이 요구된다.

 우리가 추구하는 이상이 가치 있고, 이상의 실현으로 나아가는 것이 옳아 보인다 하더라도, 진보의 속도를 단순히 높이는 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급격한 진보, 나아가 혁명에 의해 잃게 되는 것도 존재한다. 아니 잃는 것이 더 많을 수도 있다. 사회는 항상 백지상태에서 새로운 건축물을 올릴 수 있는 빈터가 아니다. 보수주의는, 사회는 과거로부터 연속선상에서 점진적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상은 현실에 완전히 구현되기 어렵기 때문에, 이상적이다. 그것이 현실화되었을 때의 결과는 아무도 경험한 바가 없다. 진보의 낙관적 전망이 추상적이고 공허할 때, 우리는 구체적 경험과 현실을 강조하는 보수주의적 태도를 취하게 된다.

  김우영<전주교육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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