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소멸에 대한 필사적 저항
자기 소멸에 대한 필사적 저항
  • 이소애
  • 승인 2020.01.15 19: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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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멸이란 사라져 없어진다는 뜻이지만 자기 존재가 주위 사람들로부터 소외되고 있다는 의미도 있다.

 로마의 철학자이자 문인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기원전 106~43)는 <노년에 관하여 우정에 관하여>에서 “엄밀히 말해 인생의 모든 시기가 죽음에 노출되어 있다. 노인은 젊은이가 바라는 것, 즉 장수를 이미 누렸다는 점에서 젊은이보다 행복하다”라고 했다.

 그러나 요즈음 시니어들의 고뇌는 자기 소멸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에서 가족과 공동체로부터 벼랑에 기울어진 나무처럼 떨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기 때문에 방전된 남은 인생에서 자기 존재를 증명이라도 하듯 필사적으로 방어하려고 한다. 어쩔 수 없는 삶에서 방전된 ‘나’를 더욱 강력하게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어 하는 행동이 표출되어 진다. 곧 ‘나’를 세상 밖으로 내놓으려는 의지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커지는 현상이다.

 나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은 과정에서 무시를 당하는 일이 발생할 시에는 극단적인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 폭력과 폭언이 발산된다. 악의적이 아닌 자연 발생적인 행동을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데서 오는 서글픔이 심각하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너무 멀쩡하고 너무 또렷해서 혹시 내가 비겁함 때문일까 하는 마음 탓을 해본다. 아슬아슬한 구름다리를 건널 때처럼 양손을 꼭 붙들고 부들부들 떨며 걷는 모습이 살아가야 할 시간의 내비게이션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요즈음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하루하루를 산다. ‘친구’와 영원한 이별이라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비보에 나를 어지럼증으로 마구 흔든다.

 며칠 전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인사를 앞두고 검찰총장과 충돌한 이유와 관련해서 “검찰총장이 저의 명을 거역한 것”이라고 강조했다는 한겨레 신문(2010.1.11.)을 보고 놀랐다. 민주당과 이낙연 총리도 옹호에 나서 힘을 실어 줬다니 진짜 부러웠다.

 왜냐면 십여 명 되는 가족들과의 대화에서도 부모가 자녀들에게 명령을 내린다는 일은 꿈같은 환상이기 때문이다. 아예 부모 집을 드나들지 않겠다는 무언의 행동을 해도 힘을 실어 주는 가족이 전혀 없다는 게 슬픈 현실이다.

 이럴 때면 어머니와 함께 저물녘엔 쌍도곳대질을 했었던 기억을 떠올려 본다. 겉절이를 버무리고자 고추를 찧는다거나, 절구에 곡식을 넣어 빻거나 찧는 일을 생각한다. 도곳대질보다는 힘주어 절구질할 때마다 미운 친구나 속상했던 일들을 넣고 분을 삭이기 때문이다. 그 땀방울이 이마를 적실 즈음 명령에 반기를 드는 가족들이나 주위 사람들을 가슴으로 짓이겨 보는 것도 유일한 나의 심리적 치유 방법이다.

 라우라 에스키벨의 소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1950 멕시코, 2019 민음사)에서

 “음식은 단순한 먹을거리가 아닌 자기표현 수단이자 사랑과 슬픔과 욕망을 전달하는 매개체다”라고 한다.

 “음식이 지닌 풍부한 감각을 통해 독자의 은밀한 감성과 욕망을 건드려 에로틱한 상상력을 부추긴다”라면서 오감을 열어 풍만한 감각의 세계인 음식을 즐기라고 한다.

 요리법을 통해 자신의 고통과 슬픔, 상처 등을 치유할 수 있어 부엌은 이중적 의미가 있는 공간이라고 한다.

 곧 설 명절이 다가온다. 명절은 가족들이 음식을 통해서 서로 은밀한 신비스러운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면 어떨까. 무의미한 부엌에서의 나.

 음식을 만들고 설거지하는 노동이 아닌 음식 안에서 자기만의 상상과 자기만의 자유를 창조하는 나를 불러온다면 즐거워질까?

 현재를 참고 견디기 위해 어머니와 연탄불 위에 솥뚜껑을 올려놓고 명태전은 부치던 매서운 바람을 붙잡아 본다. 마늘과 파 그리고 양파를 손질하는 일은 내가 도맡아 하면서 눈물을 훔쳤다. 혹독한 과거의 경험이 현재를 이겨내는 버팀목이 되어준다. 잃어버린 과거의 나를 끄집어내는 일은, 현재의 내가 소멸하지 않기 위한 필사적 저항이다.

 이소애<시인/ 전주문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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