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회춘술 (3)
얼굴 회춘술 (3)
  • 최정호
  • 승인 2020.01.15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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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용 수술이 언제, 어떻게, 누구에 의해 시작되었는지 잘 알 수 없다. 기록이 확실하지 않고 그 증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1930년대 미국 성형외과 학회가 결성되어 성형외과 전문의를 양성하기 시작하고, 치과, 이비인후과, 일반외과, 안과 등등 각 분야의 선구자들이 함께 참여하여 전쟁과 재난에 의해 심한 부상을 입은 사람들에 대한 종합적인 재건수술을 시작했지만, 미용 성형수술에 대한 평판은 여전히 ‘돈만 밝히는 돌팔이’ 수준에서 맴돌고 있었다. 기능이 아닌 단순한 외모만 고친다는 것이 당시의 의사나 환자에게 의술의 낭비 혹은 오용으로 간주하였던 것이다.

 1903년 Charles Conrad Miller는 시카고에 세계 최초로 미용성형외과 병원을 열었다.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발견 400주년을 기념하는 시카고 박람회가 1893년 시카고에서 열렸으니 그 후 10년이 지난 후 일이다. 이때는 아직 미국의 의학 수준이 유럽에 비해 한참을 뒤져 있던 시절이었으나, 미국에서 최초의 미용수술외과 개업이 발생했다는 것은 과연 미용 성형수술은 ‘자본주의’ 친화성이 처음부터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인 성형외과 의사 B.O. Rogers는 “대담하고, 원칙이 없으며, 상상력이 넘치고, 부지런한, 그러나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그의 논문에 썼다.

 그가 1926년에 발간한 책에서 보형물(implant)을 쓰는 방법을 소개했는데, 그는 삽관(cannula)나 투관침(trochar)를 사용하여 함몰된 부위, 구덩이(pits), 주름살(lines on the face)에 보형물을 밀어 넣는다고 했는데 사용되는 종류는 비단, 셀룰로이드 입자, 식물상아, 수지(gutta-percha) 등 녹지 않는 물질이다. 그가 이렇게 다양한 물질을 사용하고 이를 책에 쓴 이유가 있다. 애초에 오랫동안 바셀린( Vaseline)이 이러한 보형물의 역할을 해오다가, 감염과 부작용으로 Eckstein이 저온에서 파라핀을 사용하는 방법을 발표한(1902년) 이래 적어도 20년은 이 파라핀이 사용되었으나 부작용을 경험하고, 다른 물질을 사용하고자 여러가지 시도를 하였던 것이다.

 바셀린이나 파라핀 사용의 부작용 때문에 찾아오는 환자들을 요즈음은 보질 못했지만 내가 전공의 시절 (1980년대)까지도 많은 사람이 이러한 재료를 사용한 후 부작용이 생겨 병원을 찾아오곤 했다. 생각해보면 이때의 시도들이 그리 부끄러운 일도 아니다. 당시 우리 의학은 보형물의 생체적합성이란 개념을 전혀 알지 못했던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의학용으로 쓰일 어떤 물건이 장·단기적으로 인체에 어떠한 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지 따져볼 수 있는 능력은 최소한 50년은 기다려야 막 생기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의학이 기본적으로 과학의 옷을 입기 위해서는 과학적 접근과, 탐구, 결과를 생산할 수 있어야 했다.

 사실 지금도 의학은 과학보다는 기술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아직도 우리는 인체를 잘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배우고, 다른 의사의 경험을 참조하고, 자신의 경험과 실패를 참조하여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뿐 히포크라테스의 금언처럼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기회는 순식간에 지나가고, 실험은 위험하고, 판단은 어렵다” 지금도 성형외과의사는 환자가 원하는 함몰부위를 채워 넣기 위해 최초의 시카고 개업의가 했던 일을 반복한다. 다만, 이제는 성형수술의 늘어난 수요에 발맞추어 의공학적으로 개발된 생체 적합성이 증명된 물질을 주로 사용하여 그 부작용을 줄일 수 있을 뿐이다.

 필러라고 불리는 그 물질의 생산단가가 획기적으로 낮아진 10여년 전부터 우리는 공업용 필러나 비의료용 물질이 주입되는 경우를 잘 발견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도 이 새로운 필러가 일으키는 새로운 부작용으로 많은 사람은 또 다른 고통을 당하기도 한다. 인간은 어쩌면 편안함보다는 위험한 모험에 끌리는 본성을 타고났지 않았을까?

 어쨌든 그 최초의 성형외과 개업의사 Miller는 시금치를 가는 기계를 구입하여 사용할 수 있는 별의별 것들을 갈고 섞어서 인체에 밀어 넣었다. 인체는 주인을 잘 못 만나 그때나 지금이나 고생이 많다. Miller는 불로초, 만병통치약 같은 명약을 제조하여 대규모 약국체인까지 만들어 팔다가 사망사고를 일으켜 고발을 당했다. Miller는 동시대인이나 그 후배들에게 ‘한편으로는 돌팔이 같고, 한편으로는 예지력 넘치는 외과의사’로 평가받았다. 그의 탐욕은 유별났지만, 그는 현대 미용수술의 선구자라 불리기에 마땅한 많은 업적을 남겼지만, 당시나 지금이나 반쯤은 사기꾼으로 통한다.

 최정호<대자인병원 성형외과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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