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병호 시인 ‘사소한 연애의 추억’
양병호 시인 ‘사소한 연애의 추억’
  • 김미진 기자
  • 승인 2020.01.15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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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사랑의 곳간은 탕진될 것이니/ 마구 사용해야 할 일이었음에도/ 나는 왜 습관처럼 꼽꼽쟁이 노릇을/ 차마 버리지 못하였던가/ 그대에게 허여하지 못한/ 사랑의 알곡들이 어두운 껍질 속에서/ 두런두런 밀어를 속삭이다”「낭비의 미덕」중에서

지금 누군가 옆에 있다면 더 늦기전에 “사랑해”라는 말을 당장 뱉어내야 할 시간이다. 시인이 “사랑의 저축은 허비요 사랑의 낭비는 미덕일지니”라고 내린 강령에 따라 몸과 마음이 저절로 움직이기 시작할테니….

양병호 시인의 시집 ‘사소한 연애의 추억(시문학사·1만원)’을 펼치니 지난날 더 열정적이지 못했던 시간들을 되돌아보게 된다. 하지만 그 뒤돌아봄이란 것이 후회나 연민의 마음은 아니다. 시인이 ‘흐름’이라는 작품에서 노래한 것처럼 누구나 “살다 보면, 둥글둥글 닳아질”테니, 그냥 하릴없이 보내는 편이 낫다는 깨달음이다.

 이번 시집은 양 시인이 ‘스테파네트’ 이후 6년 만에 펴낸 여섯 번째 시집이다. 그 세월이 흐르는 동안 시인의 작품도 변화했는데, 시집 전반적으로 갈등과 욕망보다는 변화를 받아들이는 삶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임환모 전남대 국문과 교수는 “이 두 시집은 삶의 성찰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아주 많다. 그러나 시작 방법이나 구성원리 면에서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지만 지난날을 회상하거나 현존재의 인식에서 시적 주체의 태도는 상당히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전자가 미래에 대한 기대 속에서 현재의 욕망하는 주체의 갈등상을 내포하고 있다면 후자는 그러한 갈등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존재론적 변화를 긍정하면서 무위의 삶을 표현하고 있다”고 해설을 붙였다.

 시집은 총 5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 ‘운명’은 ‘~주의’시리즈에 나타난 지적 탐구와 ‘반성문’시리즈에 나타난 추억으로 구분해볼 수 있다. 가령 ‘고전주의’와 ‘초현실주의’는 고전주의와 초현실주의의 작시법에 입각해 창작돼 눈길을 끈다. ‘반성문’에서는 윤리적 기준을 흩트려서 관례적으로 인식하는 선한 삶과 성공한 삶을 의문에 붙인다.

 제2부 ‘석양을 바라보는 법’에서는 사건 중심으로, 제3부 ‘산수유나무’에서는 자연물에 대한 감정의 이입으로 쓴 시를 묶었다.

 제4부 ‘雨中閑想(우중한상)’시리즈에 담긴 시편들이야말로 본론으로 읽힌다. 비를 통해 현실과 추억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화자의 모습을 따라가다보면, 깨달음이 커진다. 제5부 ‘퀘백에서 졸다’에는 국외와 전라도 일대의 여행지에서 느낀 감정들을 술회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시집을 관통하고 있는 이야기들은 흘러가버린 시간과 지금 흐르는 시간의 중첩과 대비다. 현재의 풍경 속에서 느닷없이 덧없는 과거가 중첩되어 현재의 사유가 영문도 모른 채 허무에 빠지게 되는 것. 여기에 시인은 미래의 전망을 읊진 않는다. 이는 허무적 정서를 배가시키기 위한 시인의 전략인데, 흐르는 것은 자기 역사의 힘과 방향으로 다시 흐르니 강물의 미래를 예견하는 것은 헛된 일이라고 말할 뿐이다.

 하루의 시간으로는 해질녘이고 한 해의 시간으로는 늦가을 즈음이며 일생의 시간으로는 친구들과 소원해지는 중년의 목소리를 조근조근 담아낸 시집이 큰 공감을 자아내는 이유다.

 시인은 전북 순창 동계 출생이다. 전북대학교 인문대학 국문학과에서 학부, 석사, 박사과정을 마치고 현재 모교의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시문학’으로 등단한 이후 여섯 권의 시집과 ‘한국현대시의 인지시학적 이해’, ‘인지문체론’ 등 여러 권의 저서를 펴냈다.

김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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