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병선 열사는 1894년 갑오년
전라북도 정읍군 내장면 신월리 138번지
내장산 장군봉의 올곧은 정기를 내려 받아 태어났으니
갑오동학농민혁명이 정읍 고부에서
보국안민 하라 척양척왜 하라
죽창을 높이 들고 흰옷으로 백산을 이루었던 때라
고종 황제는 대한제국을 선포하시고
항일 전쟁의 백척간두에 깃발을 꽂음으로
전북의 차병선 의사도 이 나라 독립운동에 한 몸 헌신하게 되었다
열사는 배달의 민족 고조선의 성지
거친 벌판 만주벌 길림성 왕청현에서
의혈의 태극단에 가입하여 상등병으로 활약하기 시작한다
태극단은 1919년 3.1운동 이후
장백현 임강현을 중심으로
조인관 정삼승 김동준 등이 조직하였다
태극단은 힘을 모아 의용대를 편성하여
국내로 잠입시켜 지단을 설치하고
일제의 군경과 전투를 전개하는 용맹을 떨쳤다
그와 함께 현지 본단에서는
장백현을 근거로 활약하던 대한독립군비단
광복단 흥업단 대진단 등과 연합하여 작전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차병선 열사는 1921년 음력 5월
단장 임석우의 명령으로
중대장 이영식 소대장 고인식의 지휘 아래
임강현을 출발하여 음력 7월 평북 후창군에 도착
28일 후창군 동흥면 소재 남신주재소
경찰과 교전하여 왜놈 순사부장에게 크게 중상을 입혔다
이후 따로 소대장 고인식을 따라 평남으로 이동하여
음력 7월 22일경 영원군 대흥면 일대에서
뜻있는 유지들에게서 독립자금을 모집하였다
의사는 삭풍이 불어오는 이국 만 리
감내하기 어려운 인간적 외로움도
두고 온 가족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도
그에게는 오직 보국안민 척양척왜
왜놈들 침략자로부터 나라를 되찾아
겨레의 소원을 일구어내는 애국애족의 불꽃만이 불타올랐다
열사는 1924년 8월 그 해 그 날도
뜨거운 염천 아래 경함 남원산에서
소대장 고인식 등과 함께 평강경찰서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차병선 독립 열사는 1925년 3월 24일
경성지방법원 법정에서 소위 살인강도 등의
죄 아닌 죄목 대정 8년 제7호 위반으로
징역 15년을 선고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약 9년 1개월 동안 옥고를 치르다가
1933년 8월 31일 출감하여 부끄럽지 않게 조국의 땅을 밟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한 많은 시간들이 속절없이 지나가고
2013년에야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차병선 독립 열사여 나라와 민족을 구했으니
대한민국 만만세 통일을 외쳐라
내장산 신선봉도 서래봉도 까치봉도 저정, 저정거리며 소고춤을 추어라
장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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