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밥통
철밥통
  • 정성수
  • 승인 2020.01.06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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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밥통’은 철로 만들어 튼튼하고 깨지지 않는 밥통이다. 이는 공무원 사회에서 해고의 위험이 적고 고용이 안정된 직업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주로 공무원을 지칭한다. 철밥통의 어원은 중국에서 유래됐다. 평생을 직장에서 해고되지 않고 버틴다는 뜻에서 중국 국영기업체 직원을 철밥통이라 불렀다. 중국어로는 티예판완(鐵飯碗)이라고 한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은 모든 사람에게 직업을 보장해 주고 있다. 여기서는 능력이 부족해도 해고될 일이 없다. 눈치나 살피면서 세월만 보내거나, 이권에 개입하고 들통이 나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고 만다. 그들을 가리켜 철밥통이라고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공무원은 철밥통이라는 생각이 팽배해 있다. 무능해도 공무원법에 따라 신분보장이 철저히 이뤄지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면 호봉에 따라 봉급이 상승한다. 공무원이 되면 만년 직장을 얻은 것이 되고 만년 직장은 만년 직업으로 이어져 평생이 편하다. 우리나라의 철밥통은 공무원뿐만 아니라 공기업 임직원이나 목사, 신부 등 해고의 위험이 적고 안정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들을 철밥통이라고 부르며 선망을 하고 때로는 질시를 한다.

  ‘밥그릇 싸움’은 동서양을 가릴 것 없이 직업을 둘러싼 경쟁자 간의 처절한 다툼을 가리킨다. 여기서 지는 쪽의 밥그릇은 깨지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좀처럼 깨지지 않고 닳지 않는 쇠 밥그릇을 갖고 싶어 한다. 말하자면 영원히 깨지지 않는 밥그릇인 철밥통을 꿰차고 싶은 욕망이 간절한 것이다. 이런 철밥통을 갖고 싶어 학생들은 죽기 살기로 공부에 매달리고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철밥통이 되라고 끊임없이 주문한다.

  인간의 허영심은 남의 밥그릇까지도 자신의 밥그릇으로 착각하게 만든다. 인간들은 수많은 밥그릇들이 모인 세상에서 크고 튼튼한 밥그릇은 물론 작고 깨지기 쉬운 밥그릇을 안고 고민을 하고 위세를 떨치기도 한다. 이쯤 되면 밥그릇은 권력인 동시에 자존심이자 부의 상징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자신의 밥그릇에 교묘히 남의 밥을 담고 그 밥으로 생색을 내며 선심을 쓴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비리를 눈감아주는 작은 밥그릇을 든 사람에게 자신의 밥을 덜어주기도 한다. 19세기 말 청나라 거상 호설암(胡雪岩·후쉐엔·1823~1885) ‘상인은 이윤이 생기는 일이라면 칼날에 묻은 피도 핥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장사하는 사람과 공직자는 돈에 대한 관념은 달라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 이 말에는 ‘사람은 이름나는 것이 두렵고 돼지는 살찌는 것이 두렵다‘는 깊은 뜻이 숨어 있다. 평범해 보이는 한 마디는 철밥통들이 새겨들어야 할 시퍼런 경구다.

  이제 세상은 바뀌었다. 호시절은 가고 지난 시절은 다시 오지 않는다. 철밥통이라는 말도 희미해져간다. 이제는 금밥통이냐 흙밥통이냐 선택의 기로에 섰다. 능력을 인정받아 높은 보수를 받을 수 있는 금밥통을 차지하든지 아니면 언제 깨질지 모르는 흙밥통으로 만족해야 한다는 얘기다. 떳떳이 살고 싶으면 밥그릇에 채우는 일에 급급해서는 안 되겠다. 이제 철밥통 시대는 끝나간다. 능력 있는 사람이 나태하게 사는 것은 그 자체가 죄악이다. 허명(虛名)을 따라가기 위해 철밥통에 재물을 채우기보다 사랑을 채우는 것은 어떨지 철밥통들에게 묻는다.
 

정성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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