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이 살아있는 한 해가 되게 하소서
양심이 살아있는 한 해가 되게 하소서
  • 장선일
  • 승인 2020.01.06 14: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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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해 벽두부터 국내외적으로 평화 속에서 우리가 공존할 수 있는 소중한 양심의 가치가 흔들리고 있다. 일촉즉발의 중동사태와 불안정한 한반도의 정세 등 어지럽게 세상이 돌아가고 있다. 이러할 때 우리가 같이 해야 한다는 공존의 가치를 개인은 물론 국가사회에 진정어린 양심을 되새겨 바르게 세워야 한다.

 지금까지 수많은 학자들이 양심(良心)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있는데, 철학자와 사회학자들은 양심을 옳고 그름에 대한 지각을 결정하는 타고난 직관력이라고 보고 미래의 행위를 유발하는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누적된 주관적 추론이라고 보는 반면, 행동주의 학자들은 양심을 특정 사회적 자극에 대한 일련의 학습된 반응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종교적인 관점에 따라서 양심을 다르게 해석하기 때문에 난해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사전적 의미에서와같이 양심이란 ‘사물의 가치를 변별하고 자기의 행위에 대하여 옳고 그름과 선과 악의 판단을 내리는 도덕적 의식이나 마음씨’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양심은 언제부터 형성될까? 우리는 부모로부터 잉태되어 10개월간 어머니의 내적환경(內的環境) 속에서 수많은 세포분열(細胞分裂)과 세포분화(細胞分化)를 통해서 조직(組織)과 기관(器官)을 형성하면서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적인 정보가 태동하는데 이것이 바로 타고난 양심이다. 태아가 어머니의 자궁으로부터 벗어나는 순간 외적 환경을 접하면서 사물을 구분할 수 있는 가치를 배우고 주위의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면서 옳고 그름 즉, 선(善)과 악(惡)을 구별하면서 인간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는 도덕적 양심을 학습하면서 일상생활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태어나 살아가면서 자기가 옳다고 믿는 일을 행할 때 특별한 만족감과 함께 행복감을 얻게 된다. 반면, 나쁘다고 믿는 것을 행할 때에는 불안을 동반한 불쾌감이 따른다는 사실을 느끼게 되면서 양심이라는 기준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올바른 양심을 갖기 위해서는 타고난 유전적 내적환경도 중요하지만, 사회적인 환경으로부터 얻어지는 경험이 더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때어난 아이가 저절로 양심을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부모와 그 사회가 추구하는 올바른 가치라는 환경을 통해서 유전적 생체정보가 발현되기 때문에 사회적 환경이 더욱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지난해를 비롯한 과거의 환경에서 얻어진 경험적 사실을 돌이켜 보고 통렬히 반성해야 미래의 올바른 양심을 세울 수 있는 것이다.

 먼저 지난해 정치적 환경에서 벌어진 수많은 일을 생각해보자. 화해를 통한 협치의 정치는 실종되고 세력 간 집단 이기주의적 발상에서 끝없는 대결구도 속에서 양심의 정치가 파탄 지경에 으르게 되었다. 특히 법무부 장관임명을 놓고 벌어진 일련의 사태를 볼 때 정치가들의 양심이 분명히 국민에게 있었던 가 반문해 볼 일이다. 촛불의 민심이 타오르던 광화문 양심이 어느덧 극단으로 치달아 연일 파탄지경에 이르는 환경으로 변하고 있다. 게다가 올 4월 총선을 앞두고 벌어지는 일련의 정치 사태를 볼 때 이들이 분명 민의를 생각하는 정치적 양심을 가지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게 되어버렸다.

 다음은 그동안 교육계에서 벌어진 일을 생각해보자. 교육환경은 우리가 올바른 양심을 형성하는데 절대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때문에 후학들에게 올바른 양심을 가르치는 교육자들이 저질은 수많은 일련의 행태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자식을 위한다는 이기적이고 고집스런 이유 때문에 자신은 물론 자녀들의 앞길을 가로막아 온 집안이 풍비박산(風飛雹散)된 사례와 우월적 지위를 가졌다는 이유로 제자들에게 갑질을 하면서 성추행까지 일삼았던 일부 교육자들의 행동사례를 돌이켜 봐야한다.

 또한 경제적 관점에서도 우리는 지난해 잘못된 사실을 돌아보아야 한다. 이는 이윤을 추구하는 활동이기 때문에 양심에서 벗어난 행위가 가장 많을 수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우리 조상들은 이를 우려하여 ‘상도덕’이라는 교훈을 우리에게 남기고 있다. 만일 경제인들에게 양심이 사라질 때 그 파장은 국민의 건강을 비롯한 일련의 삶의 궤도가 무너지기 때문에 이를 경계해야만 한다. 양심을 저버린 욕심은 죄를 잉태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사회에서 벌어지는 양심과 비양심의 행위를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가장 큰 예로 지난해 연말 우리지역에서 벌어진 일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지난 20년 동안 약 7억원 가까이 선행을 해온 ‘얼굴 없는 천사’의 기부금 도난 사건 말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인 봉사, 그것도 들어내지 않고 선한 마음으로 기부한 선한 양심을 훔친 2인조 도적의 어긋난 심보를 비추어 참으로 우리는 깊게 새겨 보야 할 일이다.

 이제 2020년 경자년 흰쥐의 해가 열리고 있다. 정치사회경제와 교육계를 비롯한 모든 구성원들이 각 분야의 올바른 환경을 조성하여 양심이 살아 숨 쉬는 축복된 한 해가 되길 간절히 소망해 본다.

  장선일<전주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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