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를 줄이면, 사람이 보인다?”
“속도를 줄이면, 사람이 보인다?”
  • 이춘호
  • 승인 2020.01.06 18: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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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의 복판인데 아직 눈다운 눈을 보지 못한 채 요즘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최근 일부 도로에서 살얼음으로 일컬어지는 불랙아이스 교통사고가 치명타를 입히고 있는 실정이다.

 교통안전과 관련하여 다행인 것은 운전자들의 복병인 눈길 운행이 아닌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요즘 보행자나 운전자들이 도로에 나서면 흔히 볼 수 현수막이 “속도를 줄이면 사람이 보인다”라고 하는 내용이다. 결국 안전속도 5030은 도심 간선도로는 시속 50km, 생활도로는 시속 30km로 차량제한 속도를 낮추는 정책이다. 차량 통행이 잦은 간선도로는 전통적으로 교통흐름이 중요한 길이다. 하지만 주요도로에서 기존보다 시속 10km 낮아진 안전속도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교통 사망사고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1970년대 우리나라에서 근대적인 도로교통체계가 확립되면서 속도제한 정책이 시작된 이래 제한속도가 60km에서 50km으로 낮아지는 역사적인 변화가 가능했던 이유다.

 동네 골목길 즉 이면도로는 제한속도 30km을 적용한다. 교통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어린이보호구역에 적용되던 속도를 대부분의 보행자가 다니는 길로 확대한 것이다. 바야흐로 속도에서 안전으로, 차 보다 사람을 앞세우는 교통안전 패러다임 대전환이 시작됐다.

 안전속도 5030은 2016년부터 시범사업으로 일부 지역에서 산발적으로 시행됐다. 시범사업을 통해 교통사고 건수와 심각도가 확연히 감소한 것이 확인됐고,

 실제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는 이들은 매년 눈에 띄게 줄고 있다. 지난해 교통사고 사망자는 42년 만에 3천명대로 처음 떨어졌다. 2013년만 해도 5천명을 넘었던 교통사고 사망자는 2014년 4,762명, 2015년 4,621명, 2016년 4,292명, 2017년 4,185명, 2018년 3,781명으로 집계됐다.

 특히 보행자 사망자수가 두자릿수(11.2%) 감소했다. ‘안전속도 5030’ 정책이 전국 주요 도시로 확산한 영향이 크다.

 교통사고 사망률, 특히 길을 걷다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사람들 비중은 여전히 높다. 최근 3년간 교통사고로 하루 평균 5명에 가까운(4.8명) 보행자가 사망했다. 이 중 절반이 넘는 사고가 폭 9m 미만 생활도로에서 발생했다. 동네 골목길을 걷다 목숨을 잃는 사람이 하루 평균 2.5명이나 된다.

 경찰청 제안으로 시작된 안전속도 5030은 국토교통부에 이어 행정안전부, 공공기관, 민간기관까지 호응하며 함께 팔을 걷어붙였다. 보행자 사망사고를 줄이지 않고는 교통 선진국으로 갈 수 없다는 일념으로 부처 간 칸막이를 걷어내고 같이 머리를 맞댄 결과물이다.

 정부 부처와 공공기관은 물론, 민간기관, 시민단체가 함께 참여한 안전속도 5030 협의회는 마침내 법 개정을 이끌어내 개정된 ‘도로교통법 시행규칙’이 시행되고 있다. 이에 따라 2021년 4월부터 전국 모든 도시지역의 일반도로 최대속도가 시속 50km로 낮아지고 보행자 사망사고의 절반이 일어나는 이면도로는 시속 30km/h로 하향할 예정이다.

 안전속도 5030은 이제 더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그동안 숨 가쁜 개발 시대를 달려오느라 사람보다 차가 먼저였다면, 이제 대한민국은 차 보다 사람을 앞에 두는 명실상부한 교통선진국으로 거듭나야 한다. 교통흐름과 안전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다면 도심 최고속도가 더 낮아질 수도 있을 것이다. 안전한 대한민국은 오늘도 조금 더딘 속도로 그러나 확실하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전주시내에서 보행자 실측 시험을 실행한 결과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에서 보행자가 건너려고 할 때 운전자 71.25%가 차를 세우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운전자는 보행자가 의사를 표시하지 않으면 거의 정차하지 않았고, 보행자가 손짓으로 건넌다는 의사를 표시했을 때에도 차를 멈춘 사례가 절반이 되지 않아 대책이 시급한 실정이다.

 보행자가 손을 들어 의사를 표시해도 정지하지 않는 차량이 많다는 점은 전라북도의 열악한 보행문화를 보여주는 것이다.

 정부는 이러한 보행자 교통사고 예방을 위하여 도로교통법 개정을 통한 ‘보행자 우선제도’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이 제도는 보행자가 도로 횡단을 하고 있을 때뿐만 아니라, 횡단을 위해 횡단보도 앞에 서 있는 때에도 운전자가 일시정지 및 서행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주요 선진국은 강력한 법률을 밑바탕으로 도로 위 보행자를 보호하고 있다. 미국, 일본, 독일 등의 경우 횡단보도를 통해 도로를 횡단하는 보행자에게 우선 통행권을 부여하고 있으며, 이를 위반하는 차량에게는 벌금 및 구금에 처하는 엄격한 법률로 보행자의 안전을 우선시하고 있다.

 결국 모든 운전자들은“속도를 줄이면, 제대로 사람이 보인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새해를 맞을 일이다.

 이춘호<한국교통안전공단 전북본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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