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꽃이 피다, 장경춘 지사
붉은 꽃이 피다, 장경춘 지사
  • 안영
  • 승인 2019.12.26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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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이 익어가는 날, 목천포 다리를 지나자 만개한 갈대꽃이 마치 솜같이 늪지 전체를 하얗게 물들이고 있었다. 100년 전에도 이렇게 하얗게 피었으리라. 그래서 익산의 옛 이름을 ‘솜리’라고 불렀나보다.

 좁다란 논둑길을 따라 황금벌판 중앙, 낯선 동네 어귀에 다다르자 시골집 마당에 녹두와 대추를 말리고 계시는 노부부가 계셨다. 그들은 100여 년 전의 피맺힌 한이 서린 땅을 지키고 있는 듯 고즈넉했다.

 널따란 남전교회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침묵의 성지였다. 익산 4·4만세 운동 순국열사비에서 장경춘 열사의 넋과 피가 뿌려진 역사 앞에 고개를 숙였다.

 장경춘 열사는 1877년에 오산면 남전리 782번지에서 태어나 3·1운동 당시에 이곳에서 살았다고 한다. 남전교회의 교인이면서 도남학교의 학생이었고 외지에서 홀로 들어와 살고 있었기에 그 당시 일가친척이 없는 외톨이였다고 한다.

 그리고 같은 마을에 사는 전 감찰 김내원의 집에서 돈을 벌기 위해 머슴살이를 하면서 교회에서 청년 활동을 하는 동안 박다연 집사의 집에서 3.1운동을 모의하며 어둠을 품고 밤이면 태극기를 그려서 등사기로 수백 장을 밀어서 만들었다고 한다.

 이때 합세했던 사람들은 모두 항일자주독립 정신이 매우 투철한 사람들이었다. 이들 중에서 장경춘은 4월 4일 그날에도 동이 트자마자 문용기 박도현 김치옥 박성엽 등 남전교회 교인들과 함께 솜리로 나가 사람들이 가장 북적이는 솜리 시장 사거리에서 시위를 전개하고 목이 터지라고 만세를 불렀다. 솜리 시장을 택한 이유는 그 시대에 많은 사람이 한곳에 모이는 날이 장날이었고 전북에서 가장 큰 장터이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 솜리는 호남평야에서 교통과 경제 활동의 요지였다. 3월 26일 목포행 열차의 승객들과 이곳 주민들이 마음을 합하여 만세를 불렀고 4월 4일 본격적으로 궐기를 했는데, 이때 젊은 기독교 신자인 장경춘도 앞장섰다.

 1919년 4월 4일 솜리 장터에서 3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였다. 어린 꽃송이들까지 모두 하얀 광목옷을 입고 나와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불렀다. 장경춘은 독립선언서를 배부하며 시내를 행진했다.

 일본의 감시가 삼엄했던 1919년 4월 4일 군중들은 한 남자의 지휘 아래 독립선언서를 나누어 가지고 태극기를 휘날리며 행진했다. 만세 소리가 횟수를 더해갈 때마다 점차 군중들이 늘어났고, 그 수는 어느덧 1,000여 명이 되었다. 군중들의 기세가 하늘을 찌르자 수많은 헌병대 군인들이 출동하여 무력으로 저지를 했다. 이대 장경춘은 저들의 총탄에 숨을 거두었는데 목숨이 다 할 때까지 독립 만세를 외쳤다.

 대열에 앞장서서 태극기를 휘날리며 앞장섰던 그를 비롯한 6명의 열사가 일본인 총칼에 의해 현장에서 숨을 거두고 30여 명이 체포되었다. 4·4만세 운동은 이처럼 많은 희생이 따랐지만, 자주독립에 대한 의지를 만천하에 알리고 나라를 되찾겠다는 의지를 온 국민에게 심어준 항거였다.

 한국독립운동사에는 “4월 4일 익산에서 큰 희생의 만세시위로 발전했다. 이 항쟁은 독립운동을 전개하는 측이나 이를 제지하는 일본군이나 모두 극단의 경우까지 대립하며 투쟁하고 탄압을 했으므로 그 양상이 어느 지역보다 더욱 참혹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오산면사무소 주차장 부지 끝에 세워진 충혼비는 1946년도에 오산면민들이 자발적으로 건립하고, 교회연구팀, 사학자들이 다녀가기도 한단다. 그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 뒤늦게 밝혀져 다행이지만 후손의 연락처나 그 사실을 증언할 만한 자료가 없어 한없이 안타까운 일이다. 정부에서는 장경춘 열사의 공훈을 기리어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2015년 만세 항쟁 현장이었던 장터 자리에 3·1 독립운동 때의 4·4만세 운동 기념공원이 만들어졌다. 공원에는 열사들의 동상과 4·4만세 항쟁을 형상화한 조형물, 순국열사비가 있다. 그해 8월 13일엔 익산 중앙체육공원에 항일 독립·민주화운동 추념탑이 건립됐다.

 그는 가고 없지만, 그 자리에 붉은, 꽃 피어 나비 한 마리 파닥이는 날갯소리 들려온다. 남전교회에서 목사님을 만나 자료집 두 권을 받아들고 돌아서니 마치 나의 슬픔처럼 비가 내리고 있었다. 땅도 그냥 울고 있었다.

 안 영(수필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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