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전라감영 2020, 전주대사습의 위상 세워야 할 원년
[신년] 전라감영 2020, 전주대사습의 위상 세워야 할 원년
  • 김미진 기자
  • 승인 2020.01.01 16: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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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감영 복원도. 전주시 제공
전라감영 복원도.

 조선시대 전라도를 총괄한 전라감영이 드디어 위용을 드러낼 경자년(庚子年)의 해가 밝았다. 전라감영은 조선시대 전라도를 다니며 국가행정이 잘 적용되고 있는지, 백성이 잘 살고 있는지를 관찰하는 관찰사가 정무를 보던 관청이자 전라도문화를 생산하고 소비한 대표적인 공간이었다. 조선왕조 발상지로 한국 전통문화의 중심도시임을 자부하는 전주라면, 반드시 기억해야 할 대표적인 역사문화공간인 것이다. 전라감영 복원완료를 앞두고 있는 지금 단순복원이나 박제화에 머물러서는 안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 중에서도 전주대사습놀이는 전라감영의 문화콘텐츠를 강화시키기 위한 더없이 좋은 아이디어라는 주장은 일찌감치 제기되어 왔다. 올해야말로, 전주대사습의 위상을 새롭게 세워야 할 원년이다. <편집자주>  

 전라도문화를 대표하는 전라감영에서는 완판본, 부채, 한지 등 전주로 상징되는 모든 것들이 생산되었다. 한지를 뜨던 지소와 책을 찍어냈던 인출방, 부채를 제작하는 선자청이 큰 규모로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중에서도 전주대사습놀이와 관련해 등장하는 통인청은 오늘날 수많은 명창들이 배출되어질 수 있었던 그 뿌리가 되는 공간으로, 그 역사성을 무시할 수 없다.

(사)전주대사습놀이보존회가 지난 1992년에 발간한 ‘전주사습사’에 따르면 전주 사습놀이는 조선 숙종 때의 마상 궁술회, 영조 때의 통인 물놀이, 철종 후기의 판소리 백일장 등 민속무예놀이를 종합해 사습놀이라고 했다고 한다. 영조대에 이르러 지방 재인청과 가무사습청에서 이를 관장하는 사습놀이가 연례행사로 계승되었는데, 전주사습놀이가 여기에 유래되었다는 것이다. 순조 때에는 사습놀이에 장원을 한 사람에게 벼슬과 함께 명창 칭호가 주어졌다고 한다.

 전주대사습놀이의 제도적 성립과 관련해 학계에서는 그 시작을 1864년 이후 흥선대원군이 전주사습놀이를 크게 장려하면서부터로 보고 있다. 판소리에 대해 매료된 흥선대원군이 전라감사에게 명을 내려 “단오절의 소리경창회를 감영에서 관장하고, 거기서 장원한 명창은 상경케 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전주부 통인청 대사습은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면서 전라감영과 같은 관청에서 진행될 수 없게 되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관청에서 진행할 수 없게된 전주대사습놀이를 민간에서 맥을 이어갔다. 전주 학인당의 대청마루는 판소리 명창을 불러들여 전주대사습의 명맥을 이었던 소중한 장소이다. 하지만 일본의 방해는 계속되었고 20세기 초기에 전주대사습놀이는 중단될 수 밖에 없었다. 해방 후 1975년에 부활되었으며, 올해 ‘제46회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를 앞두고 있다.

이 같은 역사성에도 불구하고 전주대사습놀이가 그 위상과 격을 제대로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은 현실이다. 전주대사습에 관한 기록이 충분치 않다는 것이 아킬레스건인데,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서라도 발상의 전환, 획기적인 변화와 도약이 요구되고 있다.

 특히 전주대사습에 관한 기록이 부족하다 할지라도 전주대사습이 판소리가 지금의 K-POP만큼이나 뜨거웠을 19세기에 전주에서 벌어졌던 판소리 축제라는 점만큼은 어느 누구도 딴지를 걸 수 없는 팩트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전주대사습놀이를 보존하기 위해 힘을 모았던 명창과 명인들의 발자취가 이를 증명하고도 남는다.

제45회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 당시 공연 모습. 전북도민일보 DB.
제45회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 당시 공연 모습. 전북도민일보 DB.

 전주대사습놀이의 위상을 새롭게 세워야 할 원년, 2020년이 도래했다.

 국악인들의 오래 숙원이자 대사습 관련 사료 보존과 전승을 통한 문화의 정체성을 확립해나가기 위한 거점공간이 필요하다. 또한 판소리 전용극장이 단 한 곳도 없는 전주의 실정은 전통문화중심도시의 오명이라는 여론이 크다.

 오래전부터 ‘전주대사습청’의 건립에 대한 필요성을 논의해 왔고, 전주시의 의지도 있었으나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멀리 큰 그림만 그려놓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현실적인 수준에서 추진할 수 있는 작지만 내실있는 사업들을 만들고, 그 효과를 분석해 ‘전주대사습청’건립의 당위성을 모아 가야 할 것이라는 전언이다.

 전주대사습놀이의 국가무형문화재 지정을 위해서도 사활을 걸어야 할 것이라는 조언도 넘친다. 그 역사성을 볼 때 전주대사습놀이가 절대 경연대회만을 목적에 두고 있지 않으며, 모든 국민이 즐길 수 있는 문화향수권의 확대를 위해서라도 공신력을 갖는 일이 중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또한 전주대사습놀이가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다면 ‘전주대사습청’을 건립하는 보다 빠른길이 될 수 있다.

 김용호 전북도립국악원 교육학예실장은 “궁궐 안에서 임금의 존엄성을 높이고 백성을 돌보고자 하는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 지냈던 종묘제례가 있다면, 궁궐 밖에서 백성들을 위한 것으로는 어떠한 콘텐츠가 있었는가를 고민해보지 않을 수 없다”면서 “궁궐 밖에서 백성들의 희로애락을 담당한 전주대사습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그런 만큼 국가무형문화재가 되지 못할 이유 또한 없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유구한 역사를 지닌 전주대사습은 현재까지도 이어져 전국의 수많은 국악인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전국의 많은 국악인들은 여전히 전주대사습을 큰 명예로 여기며, 이 마당을 통해 한 단계 올라서기를 원하고 있다. 200여 년의 역사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전주대사습놀이가 민족의 가치있는 무형문화유산으로서 재정립될 수 있는 가능성은 분명하다.

송재영 전주대사습놀이보존회 이사장은 “지난해 12월 초에 보존회 주최로 학술 집담회를 열어 전주대사습의 위상과 문화콘텐츠로서의 위치를 확인하고, 미래를 디자인하는데 한 발짝 나아갈 수 있었다”면서 “올해는 보존회 내에 관련 TF팀을 꾸리고, 전주시와 학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관계기관과 협력해가면서 디자인을 실현해나가는데 앞장서고자 한다”고 말했다.



 김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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