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의 울타리에 갇힌 인권감수성
‘복지’의 울타리에 갇힌 인권감수성
  • 최낙관
  • 승인 2019.12.22 13: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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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기해년도 마지막 달력 한 장만을 남겨놓고 있다. 한 해를 정리하면서 돌아본 우리의 복지 현실은 여전히 차갑고 시민사회의 공동체 의식은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지난 8월 전주 여인숙 화재로 3명의 노인이 참사를 당했던 사고와 장수판 ‘도가니’로 불리는 벧엘의집 인권유린 사건은 올해 전국적인 이슈를 불러일으킨 큰 사건으로 기억된다. 일련의 사건으로 전라북도가 세간의 관심을 집중적으로 받았지만, 그 뒤끝은 씁쓸하기만 하며 이 두 사건은 ‘복지’라는 울타리 속에 과연 인권감수성은 있는 것인지 아울러 그 복지가 누구를 위한 복지인지를 우리 모두에게 따지듯 묻고 있다.

 뒤돌아보면, 전주 여인숙 화재사건은 폐지를 수거하며 근근이 삶을 이어가던 홀몸노인들이 빛도 들지 않는 그야말로 겨우 몸 하나 뉠 수 있는 여인숙 ‘달방‘에서 화마와 함께 생을 마감했던 비정한 현실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분명 우리 곁에 있었지만 결국 죽어서야 지신들의 존재를 우리에게 알렸던 유령 같은 존재였다. 국민최저선(national minimum)을 위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제정된 지 20년이 흘렀지만 정작 희생자들을 위한 복지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허상이었음이 확인된 셈이다. 망자들의 최후 보루였던 쪽방에 대한 사회적 관심의 상실은 ‘함께’의 가치를 철저히 외면했던 우리의 민낯임이 틀림없다. 이와 함께 공분을 불러일으켰던 장수 벧엘의집 장애인시설 인권유린 사건 또한 복지 울타리의 이중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목사 부부가 운영하고 있던 장애인 보호시설 벧엘의집은 지난 2019년 2월 시설 이사장과 원장 등 3명이 장애인들에게 강제 노역을 시키고 학대와 성추행을 했다는 내부 고발로부터 시작되었다. 현재 장수군은 시설을 폐쇄하고 이사장에 대한 업무를 중단시킨 상태이며 거주 장애인들은 희망에 따라 귀가하거나 타 시설로 전원 될 예정이다. 그곳에서 거주했던 중증장애인 중에는 장애 정도가 심해 여전히 시설에서의 생활이 필요하지만, 정작 이들이 갈 수 있는 거주시설이 많지 않아 사각지대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는 현실이 당사자들에게는 또다시 아픔으로 다가오고 있다.

 과연 이처럼 사회에서 배제되거나 격리된 채 살아가고 있는 우리 이웃들에 대한 해법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사회적 압력에 대한 대응으로 문재인 정부는 2019년을 “혁신적 포용국가 원년”으로 선언하며 복지에 우선순위를 부여하고 있다. 대통령은 “우리 정부가 추구하는 ‘포용’은 국민 모두가 함께 잘 살고, 공정한 기회와 정의로운 결과가 보장되며 성별, 지역, 계층, 연령에 상관없이 국민 단 한 사람도 차별받지 않는 포용입니다”라고 그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주장으로서의 포용’과 ‘실천으로서의 포용’ 사이에는 커다란 간극이 존재함을 부인할 수 없다. ‘혁신적 포용국가’가 양적 성장이 아닌 질적 성장을 추구하며, 배제와 독식이 아닌 공존과 상생의 사회를 추구한다면, 이제 사회의 가치이자 덕목인 ‘실천으로서의 포용’은 정치적 수사를 넘어 시민의 힘으로 확대되어야만 한다.

 아직은 우리 사회의 복지에 대한 인식의 폭이 서구 복지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넓지는 않지만, 그래도 어제보다 나은 오늘,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위한 복지국가를 만들어가는 것이 우리 모두의 숙명이자 책무가 아닐까 싶다. ‘소외’와 ‘배제’가 사라진 통합의 사회를 그리며 다가오는 2020년에는 ‘복지’라는 울타리가 인권감수성 위에서 국민 모두를 포용하는 완성된 모습으로 거듭나길 간절히 기대해본다.
 

최낙관  <예원예술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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