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이 없으면 나라도 없다 - 대반격 (3)
호남이 없으면 나라도 없다 - 대반격 (3)
  • 김재춘
  • 승인 2020.01.24 0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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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함대 4차 출동 釜山서 작선 백척 격침

  이순신 함대 제4차인 이번 출동에는 좌우수영 판옥선 74척, 협선 92척 모두 166척의 함선이 동원되었다. 수군 병력이 얼마인지 기록은 없으나 판옥선 정원이 척당 164명, 기타 중선 내지 소선의 정원이 60내지 35명이라는 기준을 적용하면 판옥선 승선 1만2천여명, 협선 승선 3천5백여명 등 모두 합하여 1만6천여명의 대군으로 추산해 볼 수가 있다.

 이순신 이억기 휘하 전라도 수군이 8월24일 여수 본영을 떠나 남해섬 관음포(觀音浦)에서 이날 밤을 보내고 25일 사양(蛇梁:통영군)에서 원균의 경상도 수군을 합류한 다음 당포(唐浦)에서 밤을 보내고 26일 늦게 거제도를 지나 27일 밤은 웅주(熊州)땅 원포(院浦:창원군)에서 지냈다. 28일 낙동강 하구와 김해강 쪽으로 항진해 나가다가 가덕도(加德島)에 이르러 서북쪽에 함대를 숨기고 적정에 대해 정보를 수집했다.

 부산 앞 바다에 대규모 일본군 선단이 집결되어 있음이 틀림 없었다. 이날 가덕도 천성(天城)선창에서 지내고 29일 새벽에 출항하여 김해강 쪽으로 나아가는데 장림포(長林浦:현 부산 사하구)에서 적의 큰배 4척 작은배 2척이 걸려 들었다. 원균의 경상도 수군이 달려가 깨뜨리고 불태웠다. 이날 다시 가덕도 북쪽으로 돌아와 밤을 지냈다.

 이날 밤 이순신 이억기 원균 3수사들이 모여 내일은 적의 대군이 집결해 있는 부산포를 치기로 결정했다.

 수집된 정보로 적선은 430여척에 병력 1만8천여명으로 판단되었다.

 9월1일 새벽에 전군이 출진했다.

 아침 8시쯤 낙동간 하구 몰운태(沒雲台)를 지나는데 적의 큰배 5척, 다대포(多大浦) 앞을 지나는데 큰배 8척, 서평포(西平浦) 앞을 지나는데 큰배 9철, 절영도(絶影島:현 영도) 앞에 이르러 큰배 2척을 차례로 만났다. 모두가 바닷가에 줄지어 있었고 적병들은 조선 수군만 보면 배를 버리고 산으로 도망쳤다. 모두 부수고 태웠다.

 척후선을 내보내 부산 앞바다를 살폈다. 4백척이 넘는 대규모 선단이 선창 동쪽 산기슭에 가득히 정박해 있었다.

 거북선 돌격대장 군관 이언량(李彦良) 전부장방답(前部將坊踏)첨사 이순신(李純信) 좌부장 낙안(樂安)군수 신호우(申浩右)부장 여도만호 정운(鄭運) 중위장 순천부사 권준(權俊) 등이 장사친(長蛇陣:일렬종대로 길게 늘어진 진법중의 하나)으로 절영도와 육지 사이의 좁은 바다를 돌진하여 부산 앞바다 적 선단쪽으로 일직선으로 돌격해 갔다.

 적 선단에서 큰배 4척이 달려 들었으나 간단하게 격침시켜 버렸다. 그대로 전진하여 일렬 횡대로 적 선단앞에 포진하고 판옥선의 함포가 일제히 불을 토해냈다. 그 사이 거북선이 적 선단속에 비집고 들어가 포격과 좌충우돌로 적선을 깨뜨려 나갔다.

 이때 조선 수군은 각종 화기(火器)를 충분히 장착하고 최대한의 화력을 적 선단에 퍼부었다.

 天자 地자 총통으로 무게 30kg의 대장군전(大將軍箭, 20kg의 장군전(將軍箭)을 적 선단에 퍼부었고 크고 작은 불화살(신기전神機箭)이 꼬리를 물고 날아가 적선을 불태웠다.

 조선 수군의 맹렬한 포격에 1백여척의 일본 전함들이 깨지고 부서지고 불타는 가운데도 적군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었고, 대부분 산으로 도망쳐 조총을 난사하고 이따금 철환(鐵丸)을 날리고 수마석(水磨石)을 쏘는 정도의 대항에 그쳤다.

 전투중에 우부장 정운장군이 조총에 머리를 맞고 전사했다.

 鄭運장군은 전라도 영암(靈岩) 옥천(玉泉)에서 태어나 무과급제, 한해 전 녹도만호가 되었고 항상 이순신의 선봉장이 되었다. 이때 나이 50세였다.

 조선 수군은 상륙하여 육상의 적군을 토벌하려 하다가 날이 저물기 시작하여 서서히 퇴군하여 가덕도 쪽으로 물러나 이날 밤을 동도(同島) 앞바다에서 진을 치고 지샌뒤 각각 본영으로 철수했다.

 조선 수군 전라·경상 연합함대는 9월1일 제4차 출동 釜山해전에서 적선 1백여척을 일방적으로 불태우는 전과를 거두었다.

 *부산해전이 있었던 음력 9월1일은 그해 양력으로 10월5일로 부산시는 이날을 ’부산시민의 날’로 정하고 전승을 기리고 있다.

      
 양재숙(梁在淑) 본사 수석논설위원 
 옮긴이 김재춘(金在春)
 1992년 6월17일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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