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와 호박꽃
할머니와 호박꽃
  • 박성욱
  • 승인 2019.12.12 16: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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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박꽃도 꽃이냐

  호박. 못생긴 얼굴을 보고 호박같이 생겼다고 말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호박이 정말 못생겼나? 주키니 호박은 길고 날씬하며 작고 연한 연두색 긴 점 물무늬가 예쁘다. 애호박은 주키니 호박보다 작지만 나름 귀엽고 길게 잘 빠졌다. 단호박, 둥근 호박도 동글동글 귀엽고 윤기가 난다. 굳이 말하자면 크고 주름지고 무거운 늙은 호박을 못생겼다라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 아무튼지 호박들은 억울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덤으로 억울한 일이 또 생겼다. 바로 호박꽃이다. 사람들은 호박꽃도 꽃이냐고 말한다. 예쁘지 않은 여자를 낮춰서 말한다. 그런데 나는 어렸을 때부터 그것이 또 의문이었다. 어릴 적 탱자 나무 울타리에도 싸리나무 울타리에도 나뭇가지 쌓아둔 더미에도 호박넝쿨이 여기저기 넓게 뻗치고 올라있었다. 듬성등성 활짝 피어있는 호박꽃. 샛노랑, 연주황 커다란 꽃에는 나비와 벌들이 한참을 있다 놀고 갔다. 어느날 호박꽃을 따서 냄새를 맞다가 혀끝을 대면 단 꿀맛을 느낄 수 있었다. 중학교 생물시간에 식물이 어떻게 나비와 벌을 유혹하는지 공부하고 나서는 호박꽃에 대한 오해를 완전히 풀었다. 호박은 자손을 남기기 위해 크고 화려한 꽃을 피우고 단 꿀로 나비와 벌을 유혹한다. 호박꽃은 예쁘고 똑똑하다. 이것이 호박꽃에 대한 나의 결론이다.

 

 ▲잎만 보다가 꽃을 못 보다.

  우리 반 똑똑새 윤서가 호박꽃을 그리고 호박잎을 그리다가 힘들다고 도와달라고 했다. 윤서는 자기가 해야 할 일들을 알아서 잘한다. 먼저 자기가 해보려고 한다. 그림도 잘 그린다. 그런데 호박잎은 그리기가 힘들었나 보다. 윤서 부탁을 받고 호박잎을 관찰하였다. 그물처럼 잎맥이 펼쳐져 있고 하얀 솜털이 까슬까슬 많다. 잎도 커서 잎 한 장에 여러 단계 명암이 한꺼번에 나타나고 있었고 색 변화가 많았다. 잎 가장자리가 약간 톱니 모양 비슷하기도 하고 그리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관찰하다 보니 요 녀석과 한판 붙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윤서와 아이들은 체육 전담시간이어서 강당으로 갔다. 나만 홀로 남아서 호박잎과 씨름을 하고 있었다. 한 줄 한 줄 그리다 보니 제법 형태가 잡혔다. 빛의 흐름을 잘 보면서 색과 명암을 넣으니 호박잎이 서서히 제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점점 예술혼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2시간 드디어 호박잎 같은 호박잎 그림이 나왔다. 체육 시간이 끝나서 돌아오자. 아이들은 모두가 “우와! 진짜 같아!” 하고 탄성을 지른다. 어깨가 으쓱거렸다. ‘자식들아! 선생님이 이정도야!’ 속으로만 생각하고 미소를 지었다. 조금만 도와준다는 것이 너무 몰입한 나머지 예술혼에 불타 극사실주의 표현으로 갔다. 호박꽃 그림에 윤서가 시를 쓰기 시작했다. 윤서는 너무 일찍 커버린 애어른이다. 종종 친구처럼 알콩달콩 대화한다. 같이 웃고 울 수 있는 소울 토크(soul talk)를 하는 아이다. 그런데 시를 보고 알았다. 나는 호박잎에 몰입해 있었는데 윤서는 호박꽃과 꿀벌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 포근한 할머니 호박꽃 속에서 귀여운 꿀벌 윤서 모습이 있었다.

 

 호박꽃의 웃음

  차윤서

 

 꿀벌이 기쁨 마음으로 호박꽃에게 날아갑니다.

 호박꽃도 꽃잎을 활짝펴서 웃으며 반겨줍니다.

 

 꿀벌은 포근한 호박꽃 꽃잎 속에서

 달콤한 꿀을 먹으며 참 행복해 보입니다.

 

 세찬 비가 오던 날도

 호박꽃은 꽃잎을 활짝 펴서 벌을 기다립니다.

 

 내가 어린이집 끝나고 집에 왔을 때도

 초등학교 끝나고 집에 올 때도

 늦은 밤 학원 끝나고 집에 올 때도

 

 할머니는 호박꽃처럼 나를 기다리시다가

 활짝 웃으며 반겨주십니다

 나는 호박꽃 속 꿀벌처럼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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