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 ‘강보람 고구마’ 강보람 사장의 귀농귀촌 일기
김제 ‘강보람 고구마’ 강보람 사장의 귀농귀촌 일기
  • 김제=조원영 기자
  • 승인 2019.12.09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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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의 귀농 귀촌인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선사하고 고구마 하나로 전국을 넘어 세계에 우리 농업의 밝은 미래를 알리는 귀농인이 있다. 청년 농부 ‘강보람 고구마’ 브랜드로 성공한 김보람 사장이 화제의 주인공이다.

 “고등학생 시절 꿈 많던 청춘의 나는 지금 농업 안에서 모든 꿈을 다 이뤘습니다.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청춘은 세상에 농업을 알리려 강단에 서고, 연예인이 되고 싶던 청춘은 각종 TV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그 꿈을 이루고, 작가가 되고 싶던 청춘은 지난해 글짓기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그 꿈을 이루고, 리포터가 되고 싶던 청춘은 농업크리에이터로 1인 농업방송을 시작하면서 그 꿈을 이뤘습니다.”

 서울에서 김제로 귀농한 ‘강보람고구마’의 강보람 사장은 그동안 귀농·귀촌 과정에서 겪어온 모든 생활을 일기로 기록했다. 그가 기록한 일기를 중심으로 성공적인 귀농귀촌인의 삶을 소개한다.<편집자주>  

 

◆서울에서 김제시 공덕으로

 “저는 지금으로부터 28년 전, 서울에서 태어났는데 아토피가 무척 심했다. 부모님은 전국 방방곡곡 좋다는 병원 다 데려가 보았지만, 대답은 ‘산 좋고, 물 좋은 곳으로 가세요.’였고, 결국 부모님은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귀농’을 결심했다. 김제로 귀농하고 처음 1천 평으로 시작한 고구마농사는 10만 평으로 늘어났고, 열심히 일하며 미래가 밝아 보였지만, 한 해 수확한 고구마를 모두 저장했고, 그 많은 고구마는 그해 겨울 폭설로 인해 저장했던 하우스가 무너지면서 빚으로 돌아왔고 가정의 화목도 깨져버렸다.”

 ◆농업전문학교인 한국농수산대학 입학

 “농업전문학교인 ‘한국농수산대학교’로 진학해 전문적으로 농업을 배워서 ‘농업경영’을 해 보라는 부모님의 권유에 농대에 진학하게 된 나는 2학년 실습생이 되던 해 국내의 유일한 고구마연구소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 바이오에너지작물센터에서 10개월간 실습하게 됐다. 나는 그곳에서 만난 고구마들은 국내품종이 60여 가지, 해외품종이 600여 가지나 된다는 사실에 ‘고구마집 딸래미가 이런 것도 모르고 말이 되나?’ 싶어 매우 충격을 받았다. 고구마연구소에서 실습하던 중 ‘꿀고구마’를 연구하는 걸 보조했는데 먹어보니 맛도 좋고 또 밭에서 바이러스 저항력도 좋아 재배가 쉽다는 말에 밭에 꿀고구마를 처음 재배하게 됐고, 꿀고구마가 열풍이 불면서 많은 빚을 탕감하게 됐고, 그걸 지켜보며, ‘농업이라는게 1차 생산도 중요하지만, 정보도 정말 중요하다.’라는 걸 깨닫고 농업이 어떤 길인지 조금씩 느끼게 됐다.”

 ◆농대 졸업 후 취업이 아닌 밭을 택했다

 “대학 졸업 후 1년 동안 고민하고 상의한 끝에 ‘아빠와 딸이 함께하는 고구마농장’ ‘강보람고구마’를 만들고, 인터넷 고구마 쇼핑몰을 오픈했고, 고구마 포장 박스도 20kg와 10kg가 대부분인 기존과 달리 핵가족을 겨냥해 3kg로 바꿨다. 홍보, 마케팅을 위해 SNS를 통해 블로그에 농사 일상을 올렸고, 검색량을 늘리고자 맛집, 여행, 농산물 등 다양하게 포스팅을 하는 가운데 사람들이 점점 들어왔고 댓글이 달리기 시작하며 자연스레 고구마 판매량도 늘어났다. 그리고 방송에서 나와 부모님이 함께 기른 고구마의 사연은 많은 이들을 눈물짓게 하며, 6천 건 정도의 주문이 몰려 고구마 수확 물량이 모자라 몇 주간 기다리게 해야 하는 경우까지 생겼다. 특히, 방송이 나간 후 직업이 뭐냐고 묻던 사람들에게 당당하게 ‘농부’라고 말 할 수 있게 됐고, 그 이후 나에게는 각종 방송 출연이 쏟아졌고 나가는 방송마다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스타 농부’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2016년 3년차 농부가 됐을 때는 가락동농수산물시장에서 경매 최고가를 받으며, 대한민국의 최고의 고구마브랜드로 자리매김 하게 됐다.”

 ◆홍콩에 고구마 수출 실패…

 “농협중앙회에서 개최한 농산물크라우드펀딩에서 1등을 차지했고, 홍콩 대형상점에서도 고구마를 납품해 달라고 연락이 왔다.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1차 농산물 해외수출이라니! 2017년은 온전히 고구마 수출에 전념했다. 새로운 판로를 확장시키겠다는 마음으로, 하지만 원물인 고구마 수출하는 과정에서 부패가 일어났고 나는 또 한 번 좌절했다. 해외에서 부패가 되면 폐기비용까지 물어야 해서 손해가 말도 할 수 없었다. 다양한 시도를 했다. 온도를 바꿔보기도 했고 포장지를 바꿔보기도 했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포기하지 않고 대책을 찾던 중 홍콩에서 초대를 받고 현지에 다녀왔는데 내 고구마가 한국산이라는 이름을 걸고 판매하는 현지에서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부패가 안 된 고구마는 일주일도 안 돼 완판 됐고, 내가 방문했을 때도 많은 사람이 고구마를 사갔다. 현지 회장님께서 전 세계의 고구마 중 내가 기른 한국고구마가 가장 맛있다는 얘기를 듣고 포기할 수 없었다. 내가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이게 바로 청년 농부가 해야 할 숙제 같아서다. 내가 부패 문제를 잡고 새로운 판로를 개척한다면 뒤따라올 후배 농부들에게도 먼저 간 선배로서 또 다른 길을 개척해 줄 수 있으니까, 누군가 그 역할을 해야 한다면 바로 내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강보람고구마’의 실패, 도전, 성공

 “이제 6년차, 스물여덟 청년 농부는 어느덧 제법 ‘농부’스러워졌고, 1차 농업을 하면서 나름대로 멋있는 농업을 하고 있다. 처음 농장의 대표라고 날 소개했을 때, 일하러 오신 이모님들은 코웃음을 치셨다. 대표라고 말했지만, 호칭은 ‘야’ 또는 ‘보람 학생’ 이였다. 손주뻘 되는 애가 사장이라니 내가 생각해도 어이없을 거 같다. 6년이 지난 지금 이모님들이 날 부르는 호칭은 바뀌었다. 바로 ‘사장님’, 인정받는다는 건 마냥 좋기도 하지만 더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함께 하는 것이다. 농장의 대표로 인정받는 순간 내 어깨는 무거워졌다.

 6년차 성공한 농부라 불리는 강보람, 얼마 전에도 나를 멘토라 하는 고등학생 친구들을 만났다.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 귀농 준비하시는 분들 등 많은 분이 나를 멘토로 삼고 농부의 꿈을 꾼다. 최근에는 나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만든 SBS 미니드라마 ‘농부사관학교’가 방영되면서 나조차도 성공한 농부같이 느껴진다. 내가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세상의 흐름을 빨리 읽고, 1년 365일을 730일처럼 보내며,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어디든 갔고, 내 고구마를 알리려 전국을 누볐고, 더 나아가 해외를 누볐다. 매년 많은 시간 교육을 받았고, 공부했다. 나의 24시간은 48시간처럼 쓰인다. 지금은 느린 거북이 같은지만, 다들 달리는데 혼자 걷고 있는 나지만, 나의 5년 후는, 나의 10년 후는, 더 빠르고 더 단단할 것이다.”

 김제=조원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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