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의 기원
수술의 기원
  • 최정호
  • 승인 2019.12.09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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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서양에서 사람이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은 비슷하다. 그러나 <총 균 쇠>에서 저자가 탁월하게 지적을 해냈 듯이 문명의 발생과 성장은 지리, 환경적인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구세계에서 문명의 발생과 신세계(아메리카)에서 문명의 개화가 다른 이유, 마다가스카르 섬의 원주민이 아프리카인이 아닌 인도네시아-중국 기원의 폴리네시아인인 이유 등을 거슬러 올라간 솜씨는 감탄할 만하다.

모든 인간은 자신의 생명과 건강, 그리고 질병과 죽음에 대하여 현실적 해법을 찾기를 멈출 수 없다. 어떤 심오한 사상과 불가사의한 건축문화를 이룩한 문명인들도 자신의 생명이 유한하고, 병들고, 죽는 다는 공포에서 벗어날 수 없고, 황제와 노예들도 각기 자신의 행복을 추구한다. 한마디로 <내 몸>만큼 귀중한 것이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애초 의학에서도 이집트와 인도, 중국, 수메르 등이 가장 뛰어난 발자취를 남겼다. 현대의학의 많은 분야애서 미국이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는 것과 비슷한 이유이다. 물론 미국의 의료제도는 복지로써 전체 국민을 돌본다는 관점에서는 실패했지만,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의학의 발전을 선도해 나간다는 것은 분명하다.

  옛날에는 의사가 주술사를 겸했다. 어쩌면 통치자도 겸했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 자신에 대해 아는 것이 없기 때문에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병을 고치는 것은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일이고 통찰력을 가진 자가 자신의 경험과 추론에 의거하여 위험한 결단을 내려야 했기 때문이다. 사방천지에 널려 있는 동물과 식물, 광물에서 치료약을 구하고, 인간의 정신과 신체를 관찰하고 한계와 능력을 파악해야 했지만 참고 서적도 구글도 없으니 구전된 알량한 지식으로 무엇을 얼마나 할 수 있었겠는가? 그래서 아마도 과감하게 시도해보고 실패와 성공은 초월적 존재 혹은 신비주의에 의지했을 것이다. 이러한 의학의 한계와 현실적 고민은 사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현대 의학도 병을 완치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이 아니라, 병에 대한 경로를 파악할 수단이 과거에 비해 개선되었을 뿐이다. 경험과 지식의 축적으로 현대의학이 과거에 비해 막강한 능력을 갖춘 것은 분명하지만 오늘의 우리보다 더 지적인 생명체가 우리의 의학을 판단하게 된다면 그들도 현대의학을 수 천년 전의 선사시대의 미개한 의학수준으로 볼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재의 의학수준에 대해 자부심을 가질 충분한 이유를 가지면서 동시에 의학의 불완전성에 대한 겸손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아직 아는 것이 많지 않다. 우리 의사는 아직도 치료자이면서 주술사에 불과하다는 자각을 해야 하고, 환자들도 의사를 존중해야 하지만 의심해야 한다. 아니 존중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의사들도 많다.

 수술은 과거에 해서는 안될 일이었다. 인도의 오래된 기록에는 백내장 수술법, 코 재건술등 무척 현대적인 수술법이 기록되어 있지만, 감염과 원인 세균에 대한 지식이 생기기 전까지 수술은 긁어 부스럼일 뿐이었다. 즉 어떤 질환도 수술을 하면 사망률이 수십,수백배로 증가하기 때문에 간단한 수술도 금해야 마땅했다. 사람들은 수술적 전통과 기술이 전무한 중의학, 한의학을 멸시하거나 조롱하지만, 사실 근대에 이르기까지 동서양을 막론하고 수술은 의학의 변방에서 머물 수 밖에 없었다.

1860년대 조지프 리스터가 살균법과 무균법을 발표하고 의학계에서 이를 수용할 때까지 내과 의사만이 진정한 의사였지 외과의사는 이발사와 동업하여 발톱이나 깎아주거나, 이발이나 해 줄 능력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사소한 감염에도 원인을 모르기 때문에 대처할 방법이 없어 수술을 통해 병소를 제거하거나 재건할 수 없었기 때문에 외과의사는 의사질을 할 능력도 염치도 없었다. 히포크라테스의 선서에도 요로결석을 치료하는 것은 의사가 해야 할 일이 아님을 명문화했을 정도이다. 파스퇴르가 그 유명한 백조 목 플라스크 실험을 통해 생명의 자연발생설이 명백히 부정되고 리스터가 이러한 결과를 바탕으로 무균법을 제안했을 때 현대의학이 탄생한 것이다. 그래서 리스터를 수술의 아버지라고 부른다.

나는 조선왕조실록에서 어떤 왕이 등창이 악화되어 사망했다는 기록을 보면서 의문을 가지고 혹시 독에 의한 살해가 아닌가 의심했었다. 그러나 의학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그 같은 사태의 개연성을 납득할 수 있게 되었다.
 

 최정호 / 대자인병원 성형외과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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