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 그리고 2019」
「1969 그리고 2019」
  • 김성철
  • 승인 2019.12.09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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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9년은 역사적인 해로 기록된다. 바로 인류가 처음으로 달에 발을 내딛었던 기념비적인 해이기 때문이다. 또 20세기 최대의 문화적 사건이라 일컬어지는 ‘우드스탁 페스티벌’이 시작되었고, 비틀즈의 최후 걸작으로 불리는 가 발매되는 등 지금도 유효한 문화적 충격들을 창조한 해이기도 하다. ‘숨만 쉬어도 멋있던 시대’라 불리던 그 때, 한국의 1969년은 그러나 무척 어렵고 가난한 시절이었다.

  1960년대 후반 당시 우리나라의 금융구조는 철저히 중앙집권적으로 되어 있어 특수은행은 물론, 일반은행의 본점이 모두 서울에 있었다. 지방에서 조성한 자금이 서울로 유출되면서 지방업계의 자금난을 더욱 가중시켰다.

  그 해 우리나라 예금 중 서울이 63.5%, 대출금은 63.7%를 차지하고 있었고, 이는 전북에서 조성한 자금이 지역개발을 위한 지방의 기업에 환원되지 않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이기도 했다. 박정희 정권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성공했는지 몰라도 경제개발이 일부 도시에 편중되면서 지역 간 발전 격차는 더욱 커져갔고 이를 해소하기 위한 지역개발 금융체제의 확립이 절실했다.

 

  이처럼 어렵던 시절, 지역경제의 난관을 극복하고자 했던 도민들의 염원을 자양분 삼아 1969년 12월 10일, 전북은행이 그 첫 문을 열었다. 어려운 입지 조건에서 당시 도민 1인 1주 갖기 운동을 통해 기명식 보통주식을 발행하여 납입자본금 2억원으로 설립됐다.

  이후 가장 큰 고비였던 IMF외환위기를 극복하고 살아남은 것은 전북은행의 저력을 보여준 상징적인 일이 아닌가 싶다. 당시 10개 지방은행 중 규모면에서 7위에 머물던 전북은행이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국내 은행 중 1위를 기록하고 있던 BIS 기준 자기자본비율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혹독한 1,2차 은행 구조조정 과정에서도 당시 공적자금을 받지 않고 독자 생존한 3개 은행 중 하나로 기록되었다.

 

  그리고 2019년, 이제 우리는 JB금융지주 설립과 함께 급변하는 금융환경에 적극 대응하기 위한 선제적 경영활동과 작지만 강한 은행을 만들어 가기 위한 노력들을 통해 질적 성장에 주력하고 있다.

  ‘상환의지가 곧 담보’라는 슬로건으로 포용적 금융을 적극 실천하고 있으며, 2016년에는 캄보디아 프놈펜 상업은행을 인수함으로써 지방은행으로서는 최초로 해외진출에 성공했다. 또 지난해에는 창립 이래 최초로 1,000억원 수준의 당기 순이익을 달성하며 역대 최고의 성과도 달성할 수 있었다.

 

  우리의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니 감회가 새롭다. 사실 50년의 역사를 단 몇 줄로 정리하기에는 역부족이지만 압축된 행간 속에는 도민들의 사랑과 지지는 물론, 전북은행 전·현직 임직원들의 피땀과 노력, 희생이 켜켜이 자리 잡고 있다.

  이제 전북은행은 새로운 100년을 위한 비상을 위해 힘찬 날개 짓을 하려고 한다. 50년 전, 암스트롱은 달 표면에 첫 발을 내딛으며 “이것은 인간에게 작은 발자국이지만, 인류에게는 하나의 큰 도약이다”라고 말했다.

  전북은행도 작은 발걸음들이 모여 지금의 성장을 이뤄냈다. 이제 우리는 지난 50년의 역사를 발판 삼아 다시 써 내려갈 새로운 역사의 출발선상에 서 있다.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는 든든한 거목처럼 전북은행도 지역경제의 동반자로서 도민 여러분의 곁에서 계속 성장해 나갈 것이다.

  그 여정에 언제나 함께 해 준 도민 여러분의 응원과 격려에 감사의 마음을 담아 이 말씀을 전하고 싶다. “고마워요 50년, 함께해요 100년”
 


 김성철 / 전북은행 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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