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운동 100주년의 끝에서, 다시 초심으로 붓을 들다
항일운동 100주년의 끝에서, 다시 초심으로 붓을 들다
  • 이휘빈 기자
  • 승인 2019.12.05 18: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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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전북도민일보는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아 특집을 꾸리고 도내의 반일(反日)·극일(克日)에 대한 도민들을 생각했다. 한해의 끝에서 초심을 다지고 일본 아베 정부의 가당찮은 경제 보복 및 역사관에 대한 전북도민의 의지를 전하고자 광복회와 더불어 도내 14개군에서 항일운동의 흔적을 문인들과 함께 특집으로 꾸렸다.<편집자주>

 2019 기해년은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이 되는 특별한 해다. 광복의 기쁨도 잠시 올해 일본 아베 정권은 지난 7월 경제산업성을 통해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제조 핵심 소재의 수출을 제한’하기로 발표했다. 일본은 시행령 취지로 “국제 평화와 안전 유지를 위해서”라고 주장하지만 작년인 2018년 12월 20일부터 2019년 1월 23일까지 총 4차례 이뤄진 일본 해상자위대 소속 초계기의 대한민국 해군 함정들에 대한 저공위협 비행 사건, 속칭 ‘초계기 사건’을 배경삼아 한국이 일본의 안보를 위협하고 있기에 수출규제를 진행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기 위함으로 여겨진다. 더불어 한국의 WTO 제소에 일본의 안보를 위한 자위적 조치라는 주장이다.

 더불어 아베 정부는 이번 사태가 한국이 양국 간 합의한 12·28 합의도 파기하고, 1965년 한일회담 시 끝난 징용 배상을 문제삼아 한국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기에 내린 조치라며 경제보복을 정당화하고 있다. 아베 정부가 과거사에 대한 일말의 반성과 속죄의식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다는 모습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50여년간 한국은 일본의 속국으로 모든 것을 유린당했다.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의에서는 무상지원 3억불(국채 2억불 별도)을 지원하면서 한·일간 국가차원 및 국민간 차원 일제강점기 모든 문제의 완전 및 최종해결에 양 정부가 합의되었다고 하지만 2012년 대법원 최종 판결은 강제징용 피해자 건에 대하여 1965년 청구권 협정 제2조 완전 최종해결은 국가가 자국민에 대하여 국가차원에서 갖는 외교적 보호권 포기에 불과하고 피해자 개인이 갖고 있는 손해배상 청구권 문제는 전혀 별개의 사항이라고 판결하였다.

 비단 국내 대법원의 판결로 그치는게 아니라 국제법상 타당한 주장일뿐떠러 1991년 일본 중의원에서도 이와 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2012년 11월 대법원의 첫 판결에서 한국주재 일본 전범 기업도 처음에는 수긍하고 판결에 협조적이었으나, 일본정부가 한국주재 일본기업을 조정하면서 2013년 9월에 다시 대법원에 재 상고했다. 작년인 2018년 10월 30일 원심판결을 확정했으나 이에 따른 결과는 일본의 노골적인 경제재재로 돌아왔다.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지를 다시 돌아보면 전북은 일제의 수탈과 강압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항했다. 호남평야의 광활한 물자와 편리한 교통은 겉으로는 발전의 모습이었지만 결국에는 일본 본국의 수탈을 가속화하는 수단이었다. 1919년 군산은 구암동산에서 3·5 만세운동으로 호남 최초 만세운동의 기치를 올렸다. 총 28회에 걸쳐 30,700명이 참가하였고 사망 53명, 실종 72명, 부상자가 195명 발생하였다.

 전주시 역시 기독교와 천도교 교인 및 신흥학교, 기전여학교 학생들이 주도해 전주서문교회와 전주의 천도교 교구실의 도움으로 독립선언서를 전달 받고 3월 13일 장터에서 만세운동을 벌였다. 익산 역시 4·4 만세운동으로 적극적으로 저항했다.

 현재까지 전북 지역 독립운동유공자는 1,018명으로 추산되나 그 당시 가명으로 활동하여 드러나지 않은 독립운동가는 훨씬 많았을 것으로 짐작한다. 이름 없이 묻힌 유공자들은 셀 수 없을 것이다. 2019년 현재 독립유공자는 임실이 141명으로 가장 많으며 정읍, 순창, 고창, 군산, 남원 순으로 집계된다.

 현재 전북 지역 독립운동 주요 시설은 고창의 ‘정시해 선생 기념관’, ‘정읍의 백정기 의사 기념관,’ ‘정읍시 칠보면 무성서원’, ‘임실군 성수면 소충사’, 진안군 마령면 ‘이산의 묘’ 등이 있다. ‘장수군 정인승 선생 기념관’ 및 ‘전해산 기념관’도 뺄 수 없다. 군산 역시 ‘항일항쟁의 역사도시’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3·5군산 독립만세운동’과 그 당시 희생된 순국선열을 기리기 위해 ‘군산3·1운동기념관’을 건립했다.

 우리의 선조들 역시 저항하지 않고 눈을 감으면 헌병대에 잡혀가지 않고 고초를 겪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허나 뜻을 머금고 태극기를 들며 만세운동을 벌인 것은 개인의 영달과 행복이 아니라 훗날 미래를 열어갈 후손들을 위한 ‘각오한 희생’이었다. 전북의 문인들이 그 흔적을 오래 훑어 글로 풀어내 후손들에게 이들의 뜻을 전함과 더불어 어째서 일본 아베 정부의 이기적이고 가혹한 주장과 행위들이 그들이 주장하는 ‘동아시아의 평화’를 역설적이게도 반(反)하는지를 얘기할 것이다. 

▲ 이강안 지부장 “100인의 문인과 함께 독립운동가 열전을 준비했습니다”

“한 해를 돌아보며 ‘노 아베 운동’으로 그치지 않고, 일본을 이기고 성숙한 국력과 국가로 나아가기 위해 문인들과 뜻을 모았습니다.”

이강안 광복회 지부장의 눈빛은 형형했다. 그는 “우리 민족혼을 일깨운 3·1독립만세운동, 방방곡곡 항일운동을 국민이 함께 목숨을 바쳐가며 외쳤던 그날이 100주년이 되는 한해가 넘어간다”며 입을 떼었다. 많은 언론과 기관 단체들이 이를 기념하고 행사로 뜻을 살렸지만 여전히 일본과의 경제·외교전쟁을 치르고 있다는 만큼 이 뜻을 이어가겠다는 생각이 깊어졌다는 것.

“어떻게 하면 그날의 혼, 그날의 외침이 사그러들지 않고 이어져 갈 수 있겠습니까? 계속해서 고민했죠. 그러다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며 광복회원이자 시인이신 소재호 표현문학회장님과 함께 머리를 마주대고 논의한 결과가 ‘100인의 문인이 노래하는 독립운동가 열전’이었습니다.”

전북 도내 지역의 문인이 우리지역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를 소개하고 추앙하는 글을 써서 편찬해 내는 일을 기획한 그는 소재호 회장과 함께 적극적으로 기획에 나섰다. 그의 뜻에 따라 100명이 넘는 문인들이 흔쾌히 참여하여 재능기부를 했고 좋은 글을 만들어 줬다며 이강한 회장은 감격한 표정을 지었다.

“잘 모르던 사람들의 글을 쓰기위하여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아보고 출생지나 활동현장을 답사하며 그분들이 걸어온 고난의 길을 되집어 가며 글을 써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렇게 참여하여주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리면서 더욱 민족· 대한의혼을 일깨워 더욱 강하고 부강한 나라가 되도록 하는데 힘써야 하겠습니다”

이강안 지부장은 또 예전에 자죄문을 남기고 스스로 순국한 장태수 선생을 언급하며 “우리 모두 누군가의 치열한 저항과 피의 투쟁으로 얻어진 자유·평화라는 결실을 누렸습니다. 허나 이를 기억하고 후손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의무이기도 합니다”라고 말했다.

이강안 지부장은 끝으로 “문인들이 문학적 소양을 발휘하여 우리지역출신 독립운동가들의 업적을 기리고, 그 생애를 돌아보면서 독립운동가들의 활동과 정신을 문학적 표현(시, 산문, 단편)에 담긴 이 글들이 후인들에게 마음을 다지는 자료로 쓰여지기를 기대한다”고 두 손을 모았다.

“전북지역에는 독립운동을 하신 공으로 정부로부터 공훈을 인정받은 독립운동가가 1,065분이 계십니다. 모두 가정과 목숨을 버릴 것을 각오하고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하여 헌신하셨습니다. 올해 이어진 일본과의 새로운 경제·외교전에 국면한 만큼, 이를 외면하지 않고 맞서야 독립 정신이 이어짐을 상기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이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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