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천 김명희(山泉 金命喜)의 우리 차 사랑
산천 김명희(山泉 金命喜)의 우리 차 사랑
  • 이창숙
  • 승인 2019.12.01 17: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65>
일창이기 찻잎

 무엇인가를 분석하여 드러낸다는 것, 수치가 주는 만족감으로 위안을 받으면서 과학이나 실험으로 증명되지 않으면 신뢰할 수 없는 시대에 와있다. 최고의 첨단을 말해도 느림의 미학이 있듯, 사용하는 도구만 다를 뿐 예나 지금이나 생각의 차이는 없는 듯하다. 특히 사람 살이에서 애호하는 것이 있다면 완급(緩急)을 조절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차는 많은 이들이 즐기는 음료이다. 사실 차의 고급화와 다양화라는 측면, 더나아가 산업화에서 우리는 중국이나 일본과는 어떤 경계에 와있는가. 차 마시기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잠시 느림의 미학에 잠겨 생각해 볼 여유를 가져보자.

 조선후기 우리 차의 생산이 극히 소량이다보니 중국에서 유입된 차가 사대부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었던 모양이다. 당시 추사 김정희(金正喜, 1786~1856)의 동생 산천 김명희(山泉 金命喜, 1788~1857)의 “초의 차를 받고 사례한 시”를 보면 이 당시 중국차의 인기를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다음은 『초의시고』에 수록된 “초의에게 차를 받고 사례한 시”이다.

 

  늙은 서생 평소 차를 좋아하지 않아, 하늘이 그 어리석음을 미워해 학질에 걸리게 했네.

  더워 죽는 것은 걱정이 없으나 목말라 죽는 것은 근심이라,

  급히 풍로에 찻잎을 끓여 마셨네.

  북경에서 들여온 가짜 차는 많은데, 향편이니 주란이니하며 비단으로 쌌도다.

  내가 듣기로는 좋은 차는 예쁜 여인과 같다는데, 하녀와 같은 차 추하기 더욱 심하구나.

 

  초의가 우전차를 보내 왔다기에,

  대 껍질로 싼 새매 발톱과 보리잎 같은 좋은 차 손수 개봉했네.

  우울함과 번뇌 씻어주는 공덕과 효험은 더할 나위 없고,

  그 효과는 빠르고 산뜻하여 어찌 이리 크리오.

  노스님 차 가리기 마치 부처님 고르듯 하였으니, 일창일기만을 엄격히 지켜땄네.

  더욱이 찻잎 덖기를 정성들여 원통(圓通)함을 얻으니,

  향기와 맛에 따라 바라밀 경지에 들게 하였네.

 

  … 차가 이렇게 좋은데 어찌 사랑하지 않겠는가,

  노동의 일곱 사발 차가 오히려 적다 하리라.

  가벼이 바깥사람들에게 말하지 말게, 다시금 산속의 차에 세금 매길까 두렵다네.

 

 산천은 평소 차를 좋아하지 않아 차를 가까이하지 않았더니 학질을 앓게 되었다며 초의 차를 선물로 받고 초의의 차 솜씨를 칭찬한 시이다. 사실 산천은 차를 좋아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당시 북경의 저자에서 사왔다는 차는 비단주머니에 싸서 차의 겉모양만 번지르하고 부실함에 마실 수가 없었다는 내용이다. 이에 차를 가까이하지 않았는데 초의가 차를 보내 풍로에 차를 급히 끓여 마셨다.

 북경에서 들어온 차는 소문만 아름다울 뿐 추악하다고까지 말한 것으로 보아 포장에 비해 차도 하품이 많았던 것 같다. 그에 비해 초의가 보낸 대껍질로 싼 우전차는 정성스러워 손수 차를 마시니 그 효과가 빠르게 나타나 그 향기 노스님의 정성으로 바라밀에 든다는 시이다. 이렇게 좋은 우리의 차를 어떻게 좋아하지 않으리오. 그의 비법이 이제야 드러났으니 가벼이 바깥사람들에게 말해 다시금 산속의 차마저 세금으로 매길까 두렵다고까지 하고 있다. 열악한 우리 차시장은 물론 공납차와 사대부들 사이의 중국차 유행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하는 시이다.
    

 / 글 = 이창숙 원광대학교 초빙교수
 

 ※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은 격주 월요일자를 통해 만나실 수 있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