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병원 입원 환자의 타 병원 진료 고난기
요양병원 입원 환자의 타 병원 진료 고난기
  • 김형준
  • 승인 2019.11.20 17: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치매나 뇌졸중 같은 노인성 퇴행질환으로 고통받는 환자가 늘어나고 인구도 고령화되면서 노인 환자를 돌보는 요양병원 입원 환자도 늘어나고 있다. 자꾸만 해체되어가는 가족, 고층 아파트처럼 주거 환경의 변화 등으로 만성 노인 환자들이 가족과 함께 지낼 수가 없어 결국 요양병원에서 여생을 보내는 경우가 이제 필수처럼 되어 가고 있는 듯하다. 알다시피 요양병원은 회복을 목적으로 하는 일반 병원과는 달리 증상의 완화와 악화를 방지하는 보존적 치료와 간병이 제공 되는 병원과 요양원이 결합한 형태라 볼 수 있다. 대부분 요양병원에 입원하는 노인 환자의 특성상 하나 질병보다는 적어도 3~4가지의 질병을 복합적으로 가진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뇌경색에 의한 와상을 주 문제로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지만 전립선, 백내장, 틀니 등 여러 전문 과목의 처방이나 치료가 필요한 경우도 매우 흔하다. 요양병원에 이런 모든 전문과목이 갖추어질 수 없기 때문에 요양병원 입원 환자는 타 병의원에서 진료와 처방을 받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최근 보건복지부가 건강보험법 시행규칙을 개정하면서 일선 요양병원 입원환자, 보호자들, 그리고 병원 의료진 사이에서 일대 혼란이 발생하고 있다. 복지부가 11월 1일부터 요양병원 입원환자가 타 의료기관 진료 시 ‘요양급여의뢰서’를 지참하지 않을 경우 진료비 전액을 본인이 부담하도록 ‘건강보험법 시행규칙’ 개정했기 때문이다. 또한, 요양병원 입원 환자가 ‘요양급여의뢰서’를 지참하더라도 타 병원 진료 시 우선 본인부담금을 100/100%로 전액 진료비를 지불하고 진료 받은 병의원에서 진료비 세부명세서, 진단서 등을 발급받아 입원해 있는 요양병원에 제출하여 추후 환급받은 방식으로 바뀐 것이다. 예를 들면 전에는 요양병원 입원 환자가 치과에 가서 진료를 받은 경우 약 3만원의 총진료비가 발생하였다 할 때 환자는 본인부담금 30%인 만원 정도만 진료비로 내면 되었다. 하지만 새로 바뀐 시행규칙에 의하면 일단 현재 입원해 있는 요양병원에서 치과 진료 전에 ‘요양급여의뢰서’를 담당의사에게 받아서 치과에 가야하고(같은 병명으로 여러 번 치료 받더라도 갈 때마다 ‘요양급여의뢰서’ 지참해야 한다), 만약 이것을 제출하지 않고 진료를 받으면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가 없다. ‘요양급여의뢰서’를 치과에 제출한다 해도 치료 후에 진료비는 일단 건강보험 혜택 없이 진료비 전액 100%를 치과에 지불해야 한다. 그리고 진료를 본 치과에서 진료비 세부내역서, 기관요양기호, 진료의사면허번호 등을 받아서 현재 입원중인 요양병원에 제출하면 요양병원이 건강보험공단에 청구하고 약 두 달 뒤에 100% 지출한 진료비 중 건강보험공단 부담금 70%를 환급해주는 방법으로 바뀐 것이다. 이러한 복잡한 제도 개선에 대해 요양병원 환자들의 무분별한 병의원 이용과 불필요한 요양병원 입원을 낮추어 건강보험 재정의 건전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복지부는 그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복지부의 건전한 취지(?)에도 몇만 원정도로 총 진료비가 적은 경우나 일회성 외래진료인 경우에는 큰 부담이 안 될 수 있으나 현재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경우는 바로 항암/방사선치료를 받고 있는 암 환자들이다. ‘한국암재활협회’는 최근 보도자료를 내고, 개정된 건강보험법 시행규칙으로 인해 암 환자의 요양병원 집단 퇴원사태가 발생하고 있고 많은 암환자가 이중삼중의 고통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비난 성명을 발표하였다. 알다시피 병실 회전율을 높이기 위해 암 수술이나 비싼 검사가 끝나면 득달같이 퇴원을 종용하고 외래로 항암치료를 진행하는 상급종합병원의 형태와 현실적으로 집에서 요양할 수 없는 많은 암 환자가 요양병원을 통해 식이요법, 영양제 등 보존적 치료와 상급종합병원의 암 치료를 병행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 현재까지 암환자들은 항암 및 방사선 같은 치료를 대학병원 등 상급종합병원에서 받을 경우 암환자 산정특례로 본인부담금 5%만 지불하고 나머지 비용은 상급종합병원이 심평원에 직접 청구하여 진료비를 정산해 왔다. 그런데 개정된 시행규칙을 따르게 되면 암환자가 항암 치료를 받아 100/100% 처리했을 시 한번 진료받았을 때 적게는 수십만 원에서 많게는 수백만 원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나중에 환급받는다 해도 큰돈이 몇 달씩 묶이고 수차례 반복되면 그것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실제로 몇몇 요양병원 암환자들이 안타깝게도 퇴원하는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암환자들이 본인부담금 5%만 내고 항암/방사선 치료 등의 진료를 받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입원 중인 요양병원에서 퇴원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복지부는 이번 개정이 요양병원 입원 중인 환자의 무분별한 타 병원으로의 진료를 방지하고, 요양병원의 장기입원과 불필요한 입원을 예방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하지만, 그 취지와 달리 오히려 암환자들을 비롯한 노인환자들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고 있지는 않는지? 또한 그 이유가 당국의 획일적인 탁상행정과 상급종합병원들의 수입률에 집착한 ‘갑질’때문은 아닌지? 되돌아볼 문제인 것은 분명하다.

 김형준<의료법인 지석의료재단 효병원 진료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