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보(李奎報)의 차의 참맛
이규보(李奎報)의 차의 참맛
  • 이창숙
  • 승인 2019.11.17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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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64>
청자완(다완으로 사용),고려 11c

 백운거사로 잘 알려진 고려중기의 대표적인 문인 이규보(1168~1241), 그는 2061수라는 시를 남겼다. 술과 차를 함께 마시며 칭송하는 시 또한 적지 않다. 어릴적부터 시재(詩才)가 출중하였으나 형식이 자유로워 사마시(司馬試)에는 세 번이나 낙방한 끝에 1189년에 수석 합격했다. 그 후 동진사로 급제했지만 벼슬길에 오르지는 못했다. 시를 짓고 자유로운 삶을 살다가 서른이 넘어서야 벼슬길에 올랐다. 1199년 전주사록(全州司錄)이라는 지방관을 맡았으나 탄핵당했다. 그 뒤 경주에서 잠시 복무했으나 공을 인정받지 못하는 등 발탁과 좌천, 면직을 반복하게 된다. 젊은 시절의 이규보는 세상의 시비에 대해 거침없이 토로하였다. 때문에 관료나 사대부들은 화가 미칠까 그를 멀리하였다.

  무인집권기(1170~1270)의 문인들은 과거에 합격해도 벼슬에 오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실력보다는 무인들과의 줄서기로 벼슬길에 오르고 그렇게하여 능력을 발휘할수 있는 기회를 얻기도 했다. 이규보 역시 많은 고민과 노력 끝에 관직에는 올랐으나 무인들의 지속적인 견제와 편견 속에 놓여 있었다. 1219년 외직으로 좌천되지만 10년간은 관직을 유지하게 된다. 하지만 1230년 63세에 위도로 유배를 당한다. 이러한 굴곡진 삶 속에 67세가 되어서야 재상 반열에 오르게 된다. 세월이 흐른 탓인지 젊은 날의 비판의식보다는 자신의 뜻을 펼치기 위해 말과 행동을 삼가하며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전북 부안현 위도 귀양 시절 「잠시 감불사에서 놀다가 주지인 늙은 비구에게 주다」라는 시에서 그의 실현되지 못한 이상을 표현한 시가 있다. “유언비어로 인해 남쪽고을에 떨어졌다가 자비롭고 화평스러운 부처님 보았네”로 시작된다. 이 시는 모함으로 귀향을 왔건만 평화로운 절을 찾아 도(道)를 묻다가 귀양살이의 한을 잊었다는 내용이다.

 

  “…명성은 다 마음밖에 멀어졌고 오묘한 도(道)는 오히려 목전에 있네.

  돌솥에 차를 끓이니 향기로운 젖이 희고 화로에 불을 붙이니 저녁놀같이 붉구나.

  인간의 영욕을 대략 맛보았으니 이제부터 강산의 방랑객이 되리라.”

  라는 시이다.

 

   이렇듯 고려 무신정권의 험난한 시대에 살았던 문인 이규보는 유배와 복직을 반복하였고 결국 보신주의를 택하며 10년 동안 문예가로 역량을 발휘한다. 젊은시절 비판의식과 담담함을 표출했던 그가 은거보다는 조정에 들어가기 위해 노력했으며 세상에 대한 자각과 출세하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할지 늘 고민했던 그 심정이 짐작 가는 대목이다. 그런 그에게 차(茶)보다는 술(酒)이 더욱 가까웠던 것 같다. 즉 은거보다는 세상에 쓰임이 되고 싶었던 이규보, 그가 차 선물을 받고 공납(貢納)되는 차를 백성의 피와 땀으로 묘사한 시가 있다. 『동국이상국집』 권13에 실린 「손한장(孫翰長)이 다시 화답하기에 차운하여 부치다」라는 시이다.

 

  …운봉의 독특한 차향 맡아보니, 남방에서 마시던 맛 완연하네.

  화계에서 찻잎 따던 일 논하니, 관에서 감독하여 노약자까지 징발하였네.

  험준한 산중에서 간신히 따서, 머나먼 서울에 등짐 져 날랐네.

  이는 백성의 애끓는 고혈이니, 수많은 사람의 피땀으로 얻은 것이네.

  …그대 다른 날 간관(諫官)이 되거든, 내 시의 은밀한 뜻 기억하게나.

  산과 들판 불살라 차의 공납 금지한다면, 남녘 백성들 편히 쉼이 이로부터 시작되리.

  이규보는 노규선사가 자신을 잊지 않고 차를 보내준 것에 대한 고마움을, 손득지에게는 차를 만들기까지 번거로움과 힘든 농부들의 삶을 전하는 시이다. 관리들이 차를 마시며 맛을 품평하기까지는 차를 만들어 개경으로 실어 나르며 고생한 농민들이 있음을 생각하라는 내용이다.

   

 / 글 = 이창숙 원광대학교 초빙교수
 

 ※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은 격주 월요일자를 통해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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