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이 없으면 나라도 없다 - 전라도방어전 (4)
호남이 없으면 나라도 없다 - 전라도방어전 (4)
  • 김재춘 기자
  • 승인 2019.12.02 0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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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는 막았으나 웅치가 뚤려 全州城이 위협당하다
이치 대첩지 - 금산군 제공
이치 대첩지 - 금산군 제공

 웅치(熊峙) 방어진지의 최전방 제1저지선에는 의병장 黃박군이, 산의 중복 제2 저지선에는 나주판관 이복남(李福南)군이 그리고 산정 가까운 제3저지선에는 김제군수 정담(鄭湛)군이 배치되어 있었다.

 제1선과 제2선이 적군과 맞붙었다. 일본군 선봉이 조총을 쏘며 접근했으나 조선군의 수많은 장애물에 부딪쳤다. 조선군은 참호속에 들어 있거나 목책뒤에 몸을 숨기며 방패로 몸을 가리고 화살을 퍼부어 댔다. 일본군 쪽에 희생이 많을 수 밖에 없었다.

 일본군 선봉이 수많은 희생을 내고 물러났다.

 7월8일 아침 일찍부터 일본군 전 병력이 투입되어 골짜기를 가득히 메우며 밀어 붙였다.조총탄과 적군이 쏘는 화살이 비오듯 쏟아졌다. 은폐물 뒤에 몸을 숨겼어도 조선군의 희생도 늘어났다. 목책을 뛰어 넘는 적군과 조선군의 백병전이 벌어지고 함성과 비명이 골짜기를 뒤덮었다. 조선군 쪽에서 수마석이 날고 마름쇠탄이 적진에 떨어져 폭발하면서 일본군이 무더기로 쓰러졌다.

 그러나 파도처럼 밀어 붙이는 일본군에 마침내 제1선이 무너지고 제2선이 적군과 혼전 속으로 빠져들었다.

 정담이 활로 백마를 타고 진두지휘를 하던 적장을 쏘아 맞혔다. 그래도 일본군은 밀어 붙였고 드디어 제2선도 무너졌다. 하루 해가 다가도록 쌍방이 사력을 다했다. 최후의 제3저지선이 위협을 받기에 이르자 정담의 부장 한사람이 그에게 후퇴를 권했으나 그는 단호히 거절했다.

 "차라리 적 1명을 죽이고 죽을지언정 1보를 물러 살 수는 없다(영가살일적이사寧加殺一賊而死 불가퇴일보이생不可退一步而生)"

 사방으로 에우싼 적군 속에서 정담은 장렬하게 전사했고 그의 종사관 李봉 비장(秘將 강운(姜運)과 박형길(朴亨吉)도 혼전중에 죽었다. 피아간의 시체가 골짜기를 메웠다.

 변응정이 전투중에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고 이복남은 직속군사 중 생존자를 지휘하여 全州城 가까운 안덕원(安德院)으로 물러났다.

 웅치가 돌파된 것이다.

 같은날 권율이 지키고 있던 이치(梨峙)에서도 격전이 벌어졌다.

 적군은 6번대장 소조전융경이 직접 지휘하는 정병이었고 조선군 또한 권율이 그간 맹훈련을 거듭한 강병으로 전투는 치열했다. 조선군의 방어시설은 완벽에 가까웠고 적군은 이를 돌파하기 위해 수많은 희생을 치렀다.

 전투는 하루종일 계속되었다.

 편장(偏將) 이대기와 공시억이 결사대를 이끌고 적의 측면을 기습하기도 했다.

 동복(同福)현감 황진이 눈부시게 활약했다. 특히 그의 활솜씨는 명궁으로서 손색이 없었다. 쏘는대로 적병이 하나씩 쓰러졌다. 통신사를 수행하여 일본에 다녀올때 사가지고 온 日本刀 두 자루를 번갈아 휘두르며 적병의 목을 쳤다. 적병들이 황진에 집중 사격을 퍼부었고 마침내 이마에 총탄을 맞고 후송되었다.

 황진이 쓰러지자 적병들이 목책을 뛰어넘어 쏟아져 들어왔고, 피의 백병전이 벌어졌다.

 조선군은 물러서지 않았다.

 권율은 특이한 독전법(督戰法)을 썼다. 칼을 빼들고 진지를 종횡으로 누비고 다니며 비겁한 병사들의 전립(戰笠:벙거지)에 표를 해 두었다가 전투가 소강상태에 들면 찾아내 즉결 처분을 했다. 군령이 산과 같이 무겁고 엄해 병사들이 뒤로 물러서지 못했다.

 해가 저물기 시작하면서 적군의 사기가 급격히 떨어지더니 점차 밀려나기 시작했고 드디어 썰물처럼 錦山쪽으로 퇴각했다.

 피아의 전사자 시체가 널리고 여기저기 부상자의 신음소리가 처참을 극했다.

 "피가 흘러 길과 내와 골짜기를 덮고 피비린내가 가득했다(혈류피도천곡血流被道川谷 위지성취(爲之腥臭)"

 이치는 끝내 사수했다.

 이날 웅치가 돌파 당하고 적군이 진격해 오자 全州城은 결전 태세를 강화했다. 전에 전적(典籍:성균관의 正六品 벼슬)을 지낸 이정란(李廷鸞)이 지키고 있었다. 이정란은 全州사람으로 이해 나이 64세였다. 감사 이광은 적이 가까이 오자 군사의 반을 거느리고 성을 빠져 나가면서 "적이 오면 밖에서 공격하겠다"고 했으나 도망가기 위한 수작이었다.

 이정란은 관리들과 백성들을 타일러 성을 굳게 지켰다. 군데군데 의병(疑兵:가짜병사)을 만들어 세우고 기치를 많이 꽂아두어 군사가 많은 것으로 위장하고 밤이면 성 주변 여러 산에 수많은 횃불을 밝히게 하여 적을 속였다.
    

 양재숙(梁在淑) 본사 수석논설위원 
  옮긴이 김재춘(金在春)
 1992년 4월30일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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