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을 쓰다
마을을 쓰다
  • 진영란
  • 승인 2019.11.14 15: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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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작가와 함께 그림책 쓰기 프로젝트

 Ⅰ. 마을에서 귀인을 만나다

“정지윤 작가님이라고요? 우리 동네 한바퀴 쓰신 그 작가님이 맞아요?”

동향면 봉곡마을을 탐방하다가 아이들과 마을공부할 때 함께 읽던 그림책을 쓰신 작가님을 만났다. 진안이 너무 좋아서 아예 진안으로 이사 오신지 7년째란다. 봉곡마을에 정착하셔서 아이 둘을 낳으시고, 인심 좋은 마을 사람들과 알콩달콩 살고 계신다고 한다.

 “선생님! 꼭 우리 학교에 모시고 싶어요. 아이들과 선생님 책 읽고 마을 공부했거든요. 우리 학교에 오셔서 아이들 좀 만나주세요.” 그 자리에서 작가님을 섭외했다. 일단은 아이들과 작가와의 만남을 하고, 책쓰기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Ⅱ. 프로젝트라고요?

 1. 프로젝트 그 어려운 과제

“작가님, 우리 아이들과 5번 정도 만나시면서 그림책 작업을 함께 해 보면 어떨까요?”

 “정말 좋은 생각이에요. 한 번 해 볼게요.”

 작가와의 만남이 끝나고, 작가님께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작가님이 흔쾌히 수락을 해 주셨다. 올해 마을책 만들기 프로젝트는 성공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다음날 전화벨이 울렸다. 왠지 불길한 느낌.

 “선생님, 저 정지윤이에요. 그 작업 못할 것 같아요. 취지가 너무 좋아서 한다고 했는데 생각을 해 봤더니 엄두가 안 나요. 한 번도 해본 적도 없고, 열아홉 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도저히 끌고 갈 자신이 없네요.”

 왠지 너무 쉽게 일이 풀린다고 생각했었는데 올 것이 왔다.

 “선생님, 일단 시작만 해 주시면, 제가 끌고 가겠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1학년 때도 자세히 관찰해서 그림을 많이 그렸고, 4학년인 지금도 그림을 꾸준히 그리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전문가이시니까 출판의 과정을 아이들이 체계적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곁에서 지켜봐 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선생님은 그렇게 오랜 설득 끝에 마지못해 수락을 해 주셨다.

 “아무튼 선생님의 열정이 대단하시네요. 그럼 일단은 해 볼게요. 이 어려운 작업을 왜 하시려고 하세요?”

 “마을 그림책을 만들면 마을을 공부하는 의미가 더 있을 것 같아서요.”

 처음에는 진안지원청의 ‘찾아가는 인문학 교실’ 3회를 신청했었다. 조금 더 긴 호흡이 필요해서 2회를 더 추가신청하고, 1회는 책쓰기 사업을 활용하기로 했다. 처음 2회는 3학년과 2시간씩 시간을 나누어 쓰다 보니, 시간이 부족했다. 오전에는 4학년, 오후에는 3학년을 진행하니 아이들을 더 세심히 살필 수 있었다.

 

 2. 점 그림책

 “선생님이 나누어 주는 종이에 다양한 크기와 개수의 점을 그리고, 반으로 접어서 풀로 붙여서 작은 책을 만들어 보세요.”

 A4 여섯장 씩을 34명의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자 대 혼란이 시작되었다. 풀칠을 다 하고 점을 그리라고 했으면 훨씬 쉬웠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3,4학년이 이렇게 어릴 것이라고 상상을 못하신 탓인지, 쉽지 않았다.

 아이들은 자기들이 찍어놓은 점들이 뒤죽박죽 섞일까봐 여기저기서 도움을 청하였고, 무척이나 혼란스러웠다. 우여곡절 끝에 풀칠이 끝났다.

 아이들은 의도하지 않은 다양한 점들을 놓고, 다양한 생각들을 펼쳤다. 점을 가지고 이야기를 만드는 과정이 낯설어서 한참을 망설였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이 기발한 생각들을 떠올렸다.

 

 3. 나만의 그림책

 “오늘은 여러분의 이야기로 그림책을 만들어 볼 거예요.”

 쓸 내용을 정하기 위해서 1학기 쓰기 공책을 꼼꼼히 들여다 봤다. 태연이는 모내기의 ‘끔찍한’ 기억을 떠올려 “나가고 싶어!”라는 그림책을, 유연이는 티격태격하는 언니와의 이야기를 “흔한 자매”라는 책으로, 동생이 많아 육아에 힘든 민혁이는 “나는 특별해”라는 책을 써 나갔다. 외동인 성규는 “동생이 필요해”, 쌍둥이 여동생 때문에 힘든 서원이는 “언니가 필요해”, 누나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는 찬우는 “블랙펜서 2의 누나”라는 그림책을 만들었다.

 스토리보드가 생소했지만, 아이들은 작가님의 도움으로 자신만의 이야기를 펼쳐나갔다. “와, 멋지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니?”, “너무 재미난데?” 작가님의 칭찬과 격려는 아이들의 연필에 속도를 붙였다.

 

4. 마을 그림책

 “우리가 갔던 마을이 어디어디일까?”

 “학동 마을, 봉곡 마을, 큰터골 마을, 우정 마을, 장승 마을요!”

 한 학기동안 열심히 마을을 돌아다녔더니 아이들이 마을 이름에 친숙하다. 각자 마을 나들이를 하면서 마음에 담았던 마을들을 떠올리고, 이야기를 만들었다.

 “갈둥이랑 산책하는 경륜이를 주인공으로 해 보면 어떨까?”

 “태석이가 사는 장승마을이 좋은 건 무엇 때문일까?”

 작가님의 조언과 격려덕분에 그림책이 한 장씩 채워져 나갔다.

 

 Ⅲ. 우리도 작가가 될 수 있었어요!

 이렇게 우리들의 6개월의 프로젝트가 마무리 되었다. 꼬마 작가들은 우리 마을에 사는 작가님과 함께 불가능할 것 같았던 마을을 책으로 만드는 그 어려운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해 냈다. 이제 가제본을 마치고, 인쇄소에서 제대로 된 책의 형태로 출판하는 과정만 남았다. 작가와 함께 작가가 되는 과정을 경험한 우리 아이들은 저마다 가슴 속에 마을 그림책 한 권씩을 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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