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지예산에 대한 오해와 이해
성인지예산에 대한 오해와 이해
  • 이윤애
  • 승인 2019.11.13 19: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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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말이면 가끔 남편과 함께 전주천을 따라 걷거나 자전거를 탄다. 보이는 풍광이나 마주치는 동식물들이 정겹다. 도시의 한가운데서 누릴 수 있는 호사이다. 하루는 징검다리 앞에서 칭얼거리는 아이 때문에 쩔쩔매는 엄마와 만났다. 자녀가 셋이라서 평소에는 엄두를 내지 못했으나 친정엄마가 오셨기에 바람 쐬러 나왔다고 한다. 건너편에서 내려 한옥마을 쪽으로 가기 위해 일부러 징검다리를 건너려는 참이었다. 막내는 안고 있었으나 두 딸아이가 돌다리 건너는 것을 무서워하고 있다. 비 온 뒤 물살이 센지라 친정엄마마저 주춤거리신다. 나의 남편이 어머니를 건네 드리고 나는 큰아이 손을 잡고 건너고 아이 엄마는 막내를 안고 둘째와 손을 잡고 모두 무사히 건넜다. 모처럼 기분전환 하러 나온 아이엄마는 징검다리 건너는 일로 힘겨운 노동이 될 뻔했다. 전통문화센터 앞쪽에 보행자전용다리가 있음을 알려주었다.

 전주천에 놓인 징검다리는 대부분 돌 사이의 간격이 그리 넓지 않기 때문에 건너는데 큰 어려움은 없다. 간혹 간격이 성인남성들의 보폭을 기준으로 돌들이 놓여 있어 멀리뛰기를 해야 할 때도 있다. 타이트한 치마를 입은 여성이라면 건너는 것을 포기하고 돌아가야 할 것이다. 어린아이들이나 노인들, 장애인들도 마찬가지다. 성별이나 연령, 장애 여부 등이 고려되지 않을 때는 그저 물길에 놓인 돌일 뿐이다. 어떠한 특성의 사람이라도 이동하는데 불편감을 최소화시켜 안전하게 건널 수 있는 시설물이 소중하다.

 정책수립과정에서 여성이든 남성이든 성별이 고려되어 한쪽 성(性)이 차별을 받지 않게 하거나 불편감을 느끼지 않도록 조정하는 정책을 ‘성인지정책’이라 하고 이 정책을 집행할 때 드는 비용을 ‘성인지예산’이라 한다. 예산 편성과 집행과정에서 여성과 남성에게 미치는 영향을 미리 분석하여 반영함으로써 성별 불평등구조를 바꾸어내자는 의도이다.

 성인지예산은 1995년 북경여성대회 이후 여성계를 중심으로 제도화논의가 이루어져 왔고 2006년 국가재정법이 제정되면서 현실화되었다. 준비기간을 거쳐 2010년부터 시행되었고 2013년부터 지방자치단체도 일정비율 성인지예산을 의무적으로 편성해야 한다. 그러나 아직도 담당자들은 왜 그 사업예산이 성인지예산인지 이해하기보다는 여성과 남성이 모두 수혜자이니까 성인지예산이라고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또한 성인지예산을 여성을 위한 별도 예산으로 바라보거나 예산의 배분구조를 반반씩 나누자는 의미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다.

 성인지예산이 여성을 위한 예산으로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남성위주로 돌아갔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여성이 불편감이나 부당함을 더 느끼는데도 남성들에겐 보이지 않았던 것일 뿐이다. 남자들이라면 한 번쯤 경험했을 것이다. 여학교나 여성 다중이용시설에서 남자화장실을 찾아 위층으로 아래층으로 계단을 오르내렸던. 그래서 느꼈을 것이다. 어느 한 쪽 성(性)이 중심이 된 사회에서 다른 성(性)을 가진 사람들이 얼마나 불편한지도.

 모든 예산은 성인지예산으로 명명할 수 있다. 추가로 성인지예산 항목을 세운다기보다는 기존의 예산에 성별로 미칠 영향을 고려하여 계획하고 예산집행결과 성별로 불편감이나 차별, 불평등 구조를 개선하는 효과가 있을 수 있으면 된다. 전주천에 놓인 징검다리의 돌 사이 간격을 좁히거나 보행자전용다리를 건설하는 것도 여성관련 시설의 층마다 남자화장실을 배치하는 것도 성인지예산이다.

 최근 들어 성인지예산에 대한 기사들도 종종 눈에 띈다. ‘도시재생이 성인지예산?’이라든지 ‘가로등교체가 성인지예산?’ 등 이러한 유형의 기사들이다. 도시재생과정에서 도로정비나 공간구성을 여성친화적 도시로 만들어간다면 성인지예산이며 가로등의 조도를 높여 여성들에게 안전한 밤길을 찾아 준다면 역시 성인지예산이다. 반드시 예산집행결과에 따른 성별 수혜 및 영향분석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져서 제도의 실효성을 높여나갈 수 있다면 말이다.

 이윤애<전북여성교육문화센터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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