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장인이 만든 수공예품 같았던 오페라 ‘일 트로바토레’
[리뷰] 장인이 만든 수공예품 같았던 오페라 ‘일 트로바토레’
  • 김정수
  • 승인 2019.11.10 17: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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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이 깊어가는 11월의 초입, 한국소리문화의 전당 모악당에서는 호남오페라단의 오페라 ‘일 트로바토레’가 무대를 뜨겁게 달구었다. 지난 해 가을, 푸치니의 ‘토스카’를 무대에 올린데 이어 올해 역시 이태리 제작진과 가수들을 중심으로 베르디의 오페라를 의욕적으로 기획한 호남오페라단은 그 기획부터 연주 수준, 무대 운영에 이르기까지 33년간 쌓아온 명성에 걸맞게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최고 오페라단체로서의 면모를 과시해 보였다.

  ‘일 트로바토레’는 ‘리골레토’, ‘라 트라비아타’와 함께 베르디의 대표적 작품으로 꼽히는 걸작이다. 2막에 나오는 ‘집시들의 합창’을 비롯한 몇몇 곡들은 이미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기에 이 오페라를 처음 접하는 관객에게도 친근하게 다가온다. 작품 외형적으로는 음유시인인 ‘만리코’와 ‘레오노라’, 그리고 ‘루나 백작’이 만들고 있는 삼각관계의 사랑이 주된 갈등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정작 극의 중심에는 집시 여인 ‘아주체나’가 있고, 그녀의 극중 성격이 이 오페라의 전편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아주체나’는 처형된 자신의 어머니의 복수를 꿈꾸다가 실수로 대신 자신의 아이를 죽이게 되고, 대신 원수의 아들인 ‘만리코’를 키우는 운명에 처한다. 이 복수의 화신 ‘아주체나’와 더불어 형제인줄 모르고 연적이 되어 다투는 ‘루나 백작’과 ‘만리코’, 이들이 보여주는 숙명적 관계가 작품의 내면을 지배하고 있다. 베르디는 ‘아주체나’가 가진 비극성, 그리고 불타는 복수심에 깊은 관심을 보이면서 상당부분 강력한 극적인 힘을 이 인물에 부여하고 있다. 그러기에 그녀의 극중 성격이 사랑의 삼각관계보다 큰 원초적 생명력으로 관객들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호남오페라단은 이 베르디의 오페라를 더 이상 완벽할 수 없게 무대 위에 구현해냈다. 깔끔하고 무게감 있는 무대와, 그 무대를 지배하지도 폄하시키지도 않으면서 조화미를 보여주는 영상, 이태리출신 지휘자와 연출가의 군더더기 없이 잘 절제된 표현력, 이태리 두 주역 가수와 국내 정상의 성악가들, 전주시립오케스트라와 시립 합창단이 만들어낸 조화는 국내 최정상급 무대가 어떤 것인지 설명해 보여주었다.

  오페라는 5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현존하는 공연장르 중 가장 오래된 장르다. 현재는 뮤지컬을 비롯한 많은 공연들의 위협을 받고 있지만 여전한 전통과 권위로서 세계적 공연물이라는 위상을 지켜내고 있다. 하지만 오페라는 그 규모면에서도 많은 인력과 비용을 투입해야하는 예술이다. 그런 점에서도 그 누구도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오페라 제작 분야에 오랜 기간에 걸쳐 국내 굴지의 단체로 성장한 오페라단을 전라북도가 보유하고 있다는 점은 참으로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동안 수많은 재정적 어려움 속에서도 꾸준한 초심으로 오페라 무대를 지켜가는 호남오페라단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내며 앞으로도 오랫동안 그 무대를 지켜보고 싶은 마음이다.

 김정수 전주대학교 공연방송연기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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