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독립운동가 : 백암 박은식
달의 독립운동가 : 백암 박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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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11.07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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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암 박은식 

박은식 선생은 1859년 9월 30일 황해도 황주군 남면에서 태어났다.

1898년 독립협회의 만민공동회운동에서 문교 분야의 간부급 지도자로 활동하였고, 성균관의 교육 기능을 계승한 경학원(經學院)의 강사와 관립 한성사범학교의 교사로 재직하는 한편, 서북협성학교와 오성학교 교장을 맡아 교육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황성신문, 대한매일신보 주필로 활동하면서 민중계몽운동을 벌여 나갔다.

1911년 중국 만주로 망명하여 국혼을 발흥시킬 역사서의 저술에 진력하였다. 1912년에는 상해에서 동제사(同濟社)를 결성하였는데 동제사는 중국의 국민혁명 세력과 연대를 모색하면서 상해에 박달학원(博達學院)을 설립하여 민족교육을 실시하는 등 한국 독립운동의 기반 조성에 주력하였다.

선생은 1915년 한국통사(韓國痛史)를 간행하여 대외적으로는 일본제국주의 침략의 잔학성과 간교성을 폭로 규탄하고, 대내적으로 민족적 통분과 적개심을 유발하면서 동포들의 각성과 반성을 촉구하였다.

3·1운동을 블라디보스톡에서 맞이한 선생은 육순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대한국민노인동맹단을 조직하여 국내외 거족적인 독립운동에 호응하였다. 그 후 선생은 상해의 대한민국임시정부와 노령의 대한국민의회정부, 그리고 서울의 한성임시정부의 통일을 추진하여 그 해 9월 통합 임시정부가 발족하는데 기여하였다. 특히 이시기 선생은 상해에서 한국독립운동지혈사(韓國獨立運動之血史)를 간행하였는데, 1884년 갑신정변부터 1920년 독립군의 항일 무장투쟁까지의 일제 침략에 대한 한국 민족의 독립투쟁사를 3·1운동을 중심으로 기술한 것이다.

1925년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제2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으며 그 해 8월 만주 독립군 단체인 정의부의 지도자 이상룡을 국무령으로 추천하고 스스로 대통령직을 사임하였다. 1925년 11월 1일 66세를 일기로 상해에서 서거하였으며, 1993년 8월 유해가 고국으로 봉환,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전북동부보훈지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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