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광기(集團狂氣)의 ‘내로남불’에서 벗어나야 한다
집단광기(集團狂氣)의 ‘내로남불’에서 벗어나야 한다
  • 무울 송일섭
  • 승인 2019.11.07 18: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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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5월 10일, 촛불정부는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 선언은 잘못된 관행을 개선하고자 했던 국민들에게 새로운 기대를 갖게 했지만, 그것을 선뜻 받아들이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왜냐하면 예나 지금이나 모든 취임사처럼 뻔한 거짓말이 없고, 모든 선거 공약(公約)처럼 허무맹랑한 것이 없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어느 시대, 어느 정부에서도 이런 공식적 발표는 ‘선언적 의미’ 이상의 특별함이 담기지 않았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의 이 선언이 사뭇 진지하게 다가온 이유는 특별했다. 혹독한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촛불을 든 국민들이 국정농단의 어두운 그림자를 거둬내고 세운 정부였기에 그랬다.

그러나 최근 상황을 보면서 국민들은 큰 실망에 빠졌다. 지난 8월 9일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 지명에서부터 9월 14일 장관 사퇴까지 67일 동안은 물론이고, 사퇴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는 ‘조국 블랙홀’에 빠져서 단 한 발자국도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기대를 갖게 했던 그날의 결연한 선언은 조롱과 냉소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기회는 평등하지 않았고, 과정도 공정하지 않았으니 결과가 정의로울 수 있겠는가. 그 1차적인 책임은 정부와 여당에게 있다. 한 쪽에서는 그 동안 우리 사회의 잘못된 시스템이 불러온 사태라고 진단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지만, 여전히 우리는 혼돈(混沌)에 빠져 있고, 이 사태를 통해서 어떤 교훈이나 희망의 불씨를 찾지 못했다. 오히려 정치, 언론, 사법 등의 이해가 엇갈리면서 국민들을 편 갈라놓은 단초가 되고 말았다.

청문회 과정에서 나타난 의혹들은 국민들에게 큰 실망과 분노를 느끼게 했다. 당시로서는 제도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졌다 하더라도 공정과 정의를 기치로 내건 개혁정부가 용인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어떤 말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안타까운 일이었다. 대학입시와 관련한 자녀들의 특혜의혹을 국회에서 전수조사까지 하자는 이야기가 비쳤지만, 유야무야한 상황이고 보면 이는 한 개인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다. 지금 잘못이라고 큰소리를 치고 있는 사람들의 상당수가 그 당사자가 될 수 있다. 실제로 야당 원내대표의 자녀 의혹이 유튜브에 끊임없이 유포되고 있는 상황이다. 일부에서는 이런 제도적 허점을 악용하여 그들만의 캐슬(castle) 만들기에 정신이 없었던 것이다. 

 언제나 공정과 정의에 대한 논의가 활발했지만, 지도층 인사들의 상당수는 저들만의 특별한 해석에 집착한다. 자신의 이해에 맞으면 공정하고 정의로운 것이 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 반대가 되었던 것이다. ‘정의사회 구현’을 내걸었던 군사 정부에 ‘편법과 불의’가 난무했음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지 않은가. ‘법과 정의’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 국정농단의 주범 내지는 방조자가 되기도 했다. 그때마다 우리는 불공정과 편법을 비판하는 것으로 끝나고 말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특정인의 불공정 의혹에 대한 접근 방식이 공정하지 않은 것에까지 국민들의 관심이 확대된 것이다. 이러한 우려와 지적이 더 집요하고 광범위한 수사를 유인했는지는 모르지만, 이를 지켜보는 국민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공정과 정의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특정인의 불법부당한 행위에 대하여 시시비비를 따지는 것에 누가 문제를 제기하겠는가. 그럼에도 불공정과 불법에 대한 접근방식이 공정하지 못했다는 느낌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물론 일부에서는 이 문제에 대하여 ‘소 먼 산 보듯’ 하면서 정파와 조직의 이해에만 집착했다. 최근처럼 ‘내로남불’이란 말이 집단광기(集團狂氣)로 받아들인 적이 있을까. 자기 조직과 정파를 폄하하거나 비판하면 고소 고발이 쏟아졌고, 신속한 수사에 ‘제 식구 감싸는 편파적 행위’들이 끊이지 않았다. 어떤 사건은 동영상 등 상당한 증거가 있음에도 국민들의 상식을 넘어서는 다른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지도층들의 ‘법과 원칙’이 궁색한 방어용 수사(修辭)로 들리는 것은 필자만의 편견일까. 패스트트랙법안 관련 불법행위가 공정과 정의를 일깨우는 것이 되어야 함은 당연하다. 가벼운 교통법규만 위반해도 벌금을 내고 벌점을 받아야 하는 일반국민의 법과 원칙과 다르지 않아야 한다. 한 술 더 떠 실정법을 어긴 자들에게 가산점을 주어 공천장을 주겠다는 것이 국민들이 생각하는 공정과 정의에 부합하는 것인가. 이 포상금이 국민의 세금으로 지원된 것이 아니기를 간절히 소망할 뿐이다. 언론도 공정하지 않고 정의롭지 않았다는 지적도 많았다. 사안을 해석하는 방식은 다를 수 있겠으나, 그것 또한 어디까지나 팩트(fact)를 넘어설 수 없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최근 언론보도의 편파성은 이미 공정과 정의를 벗어났다.

어떻게 하면 이 집단광기 같은 “내로남불”의 혼돈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 그것은 간단하다. 국민의 눈높이에서, 국민의 상식 수준에서 찾아야 한다. 아무리 그럴듯한 수사(修辭)를 동원해도 국민들은 그것이 정파와 조직의 이해타산에 따른 결과임을 잘 안다. 더 이상 국민을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앞으로는 ‘법과 원칙’이, ‘공정과 정의’가 상대방을 압박하는 공격용 수사(修辭)가 되어서도 안 된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정파와 조직을 지키는 방어용의 수사(修辭)가 되어서도 안 된다. 법과 원칙, 공정과 정의가 오로지 국민을 지키고 보호하는 것일 때라야 그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이번 조국 사태에서 쟁점으로 부각된 ‘공정과 정의’에 대하여 더 많은 고민을 해야 한다. 단지 한 개인의 추락(墜落)이 안타까워서만 촛불을 들지 않았다는 사실을 똑 바로 알아야 하고, 또한 광장에서 실종된 공정과 정의가 어떤 것인지도 살펴보아야 한다. 그래야만 이 혼돈의 시대를 벗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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