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글쓰기가 필요한 이유
우리에게 글쓰기가 필요한 이유
  • 장상록
  • 승인 2019.11.07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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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하버드 대학 도서관에는 단테(Alighieri Dante) 관련 단행본만 대략 1만 2천권이 있다고 한다. 놀라움과 함께 소박한 의문이 있다. 그 책에서 얘기하는 모든 단테 모습이 새로운 영역에 있는 것일까. 핵심 주제가 모두 제 각각인 1만 2천개의 단테가 있다면 그 자체로 경이로운 일이다. 그럼 세부적인 내용은 어떨까.

  그것조차 완벽하게 모두 다른 영역이라면 그것은 거의 우주적인 사건이 될 것이다.

  언젠가 모든 서적은 각주에서조차 창작성을 유지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그래서일까.

 인문학에서 논문 무용론까지 등장하고 있다. 인문학에서의 앎과 글쓰기란 무엇인가.

  단순히 문사철(文史哲)을 인문학이라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논란과는 별개로 그것이 중요한 구성 요소임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그런 면에서 한국은 인문학적 전통이 대단히 깊은 나라다. 조선의 선비들이 추구했던 궁극의 그 모든 지향점이 거기에 담겨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것은 조선시대를 살아간 모든 사람이 추구했던 바인지도 모른다.

 굳이 <국화와 칼>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일본은 ‘칼의 나라’로 상징된다. 대조적으로 조선은 ‘붓의 나라’였다. 일본에는 군인이 아닌 무사가 얼마든지 존재하지만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군인이지 단순한 무사가 아니다. 일본 사무라이와 조선 군인의 가는 길은 그래서 다르다. 조선 통신사가 일본에 갔을 때 많은 일본인들이 통신사 일행에게 시문(詩文)을 부탁했던 것은 그런 점에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칼의 나라 일본의 학문 수준이 조선을 넘어선다. 조선인이 일본인에게 가지고 있던 우월감의 근간이 흔들리게 된 것이다. 그것은 막연한 추론이 아닌 당대 세계 최고의 지성 정약용(丁若鏞)의 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다산(茶山)은 글에서 당시 일본에 명유(名儒)들이 많이 배출되고 있다고 하면서 해동부자(海東夫子)로 일컬어지는 학자까지 나왔다고 얘기한다. 더불어 통신사가 가져온 조본렴(篠本廉)의 글을 읽고 그 문장의 정밀함과 날카로움에 감탄하고 있다.

  다산은 일본인이 본래 몹시 몽매한 사람들이었는데 교역을 통해 중국의 좋은 서적은 사가지 않은 것이 없다고 말하면서 이렇게 탄식하고 있다.

  “지금 그들의 문학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앞서 있으니, 매우 부끄러운 일이다.”

  근대 한국사의 비극은 단순히 칼의 부재에서 비롯한 것이 아닌지 모른다.

 불편한 얘기지만 다산의 탄식은 그 이후 더욱 극대화 된다. 그리고 조선은 더 이상 인문사회학 분야에서도 일본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

  여전히 일제 잔재를 청산하자고 한다. 친일과 반일의 스펙트럼을 통해 국민을 양분하기도 한다. 일제 청산은 과연 무엇을 말함인가. 어쩌면 가장 근본적인 사고를 규정하는 개념의 청산부터 필요할지 모른다. 자 이제 청산해보자.

 “사회, 학교, 시간, 경제, 문화, 문명, 사상, 연설, 계급, 법률, 자본, 토론, 종교, 이성, 철학, 감성, 주관, 의식, 과학, 물리, 화학, 분자, 원자, 질량, 공간, 이론, 문학, 미술, 비극, 사회주의, 공산주의, 민주주의”

  오늘도 당신이 말하고 있으며 당신의 사고(思顧)를 규정하고 현상에 대한 설명의 전제로 삼는 이 단어들을 어떻게 청산할 것인가.

  아무렇지 않게 쓰고 있는 이 모든 개념을 창조해낸 것은 다름 아닌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다. 일제 청산에 있어서 이것 보다 근본적인 것이 또 있겠는가.

  후쿠자와 유키치는 사회진화론적 측면에서 탈아론을 통해 일본 제국주의 기초를 닦은 인물이라는 비판이 있다. 나는 그를 옹호할 생각이 없다.

  다만 아이러니한 것은, 그에 대해 비판적인 그 누구도 그가 만들어 놓은 개념의 틀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가건물(假建物)이 일본식 한자어라고 한다.

 그럼 당신이 그토록 목 놓아 외치는 민주주의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데모크라시(democracy)를 민주주의 이상의 개념으로 규정할 수 있다면 친일청산은 완성되는 것인가. 우리에게 아직도 글쓰기가 필요한 이유다.

 장상록 / 예산군농업기술센터 농촌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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