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따라 춤추는 교육정책에, 흔들리는 교육현장
정권 따라 춤추는 교육정책에, 흔들리는 교육현장
  • 한기택
  • 승인 2019.11.06 14: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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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에서 입시제도 개편안을 주문하였으며, 사흘 후인 25일에 교육개혁 관계 장관회의에서 대학입시의 정시모집 선발 비율 확대를 거듭 지시했다.

  그리고 “자사고·외국어고·국제고 등을 중심으로 사실상 서열화된 고교 체계가 수시 전형의 공정성에 대한 불신뿐 아니라 교육 불평등, 입시 위주 교육으로 인한 일반 고교와의 격차를 낳고 있다”며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도 더 이상 미룰 수 있는 일이 아니다”고 강조하였다.

  이에 따라 유 은혜 교육부 장관은 현 고1이 대입을 치르는 2022학년도 대입부터 서울 주요 대학의 정시(수능위주전형) 비중이 확대되고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을 포함한 수시 비중이 줄어들 것으로 보이며, 자사고·외고·국제고를 법 시행령에 있는 근거 조항을 삭제해 2025년에 전부 없앤다고 하였다.

  문 대통령이 돌연 정시 확대를 들고 나온 것은 최근 정치 상황과 관련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2022학년도 대입은 지난해 8월에 국가교육회의, 대입개편특위, 공론화위원회를 거치며 1년간 공론화 끝에 ‘정시 비율 30% 권고’로 정했다. 작년에 공론화를 거쳐 결정된 2022학년도 대입방향을 안착시킬 시점인데, 이에 맞춰 고교를 선택한 학생들은 대통령 지시 한마디에 입시제도가 갑자기 바뀌는 상황이 혼란스러울 것이다.

  1년 전에 결정한 대입정책을 송두리체 뒤흔든 것이라 볼 수 있다. 학종 위주 수시전형은 그 공정성에 대한 불신이 커져 수능 위주 정시전형과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수많은 학생의 미래가 달린 입시제도를 한 달 안에 바꾸려는 졸속·과속은 무리라고 생각된다.

  또한 평준화의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1992년 외고가 특목고로 지정된 데 이어 2002년엔 자사고 제도가 도입됐으며,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정부에서 만들어지거나 유지된 제도이다. 수월성 교육으로 인재를 길러내야 국가 미래를 기약할 수 있다는 인식을 모든 정권이 공유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독 이 정부는 자사고·외고를 말살하려고 한다. ‘고교 서열화’ ‘교육 불평등’ 등 이유를 들지만 조금은 논리에 맞지 않는 것 같으며, 정권이 바뀌는 2025년의 교육정책을 어찌하려는지 궁금하다.

  청와대, 정부, 여당, 국가교육회의가 이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하고 공론화하여 추진했다는 흔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유은혜 교육부 장관은 지난 21일 국감에서도 “수능은 ‘5지선다’라서 창의 교육과 배치된다는 의견이 있다”며 정시 확대에 부정적 견해를 보였다.

  지난 10년간 학종이 급격히 확대된 것은 이를 대학재정지원사업과 연계한 교육부의 영향이 미친 결과라는 해석도 있다.

  정시 확대도 나름의 필요성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돌발적이고 즉흥적인 정시 확대에 대한 정책 발표 후 학원가에는 문의가 급증하고 있으며 교과 심화학습·선행학습이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라고 예견하는 사람도 있다.

  대학입시제도의 적용 학년을 보면 현재의 초5∼고1은 ‘정시·수시 반반’이고, 초4 이하는 ‘고교학점제’가 시행되고, 자사고·외고 폐지는 현재 초4 학생들(2009년생)의 고입부터 적용된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 30개월 동안 대선 공약 등에서 공언했던 교육정책을 철회하거나 번복·연기·백지화한 주요 교육정책이 10개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은 한 나라의 장래를 결정하는 백년대계이며, 교육정책은 미래의 주인인 학생들을 위한 정책으로 미래를 내다보고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해야 한다.

  교육정책은 적어도 한 세대인 30년은 내다보고 계획되고 유지되어야 안정적인 교육 활동이 전개될 수 있는데 우리나라 교육정책은 5년 내지 10년도 못가서 바뀌어 교육 활동의 안정성을 해치고 있다.

  눈앞의 난국을 모면하기 위해 교육정책 결정을 졸속으로 추진하여 교육현장과 학생과 학부모들을 혼란으로 빠트려서는 안 된다.

 한기택 코리아교육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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