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아암(兒庵)과 다산(茶山)의 교유
차, 아암(兒庵)과 다산(茶山)의 교유
  • 이창숙
  • 승인 2019.11.03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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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후기 숭유억불이라는 사회적 환경에도 불구하고 소수의 승려와 저명한 유학자들이 교유를 통해 불교사상과 유학이라는 지적 호기심을 채우고 있었다. 이러한 그들의 마음을 열어주고 소통할 수 있도록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차였으며, 그들에게 차는 소통의 매개체였다. 만덕산 백련사에 있던 아암 혜장(惠藏, 1772~1811)과 강진으로 유배온 다산 정약용(1762~1836), 유불(儒佛)의 만남은 학문적 영향은 물론 한국 차문화사의 중요한 기반을 마련하는 계기가 된다. 그들은 승속(僧俗)을 뛰어넘어 차시(茶詩)를 주고받으며 차와 선의 아름다움을 교감하는 깊은 교유를 맺었다.

  아암은 전남 해남군 화산 출신으로 키가 작고 왜소하며 순박하여 마을 사람들이 그를 팔득이라 불렀다고 한다. 어려서 해남 대둔사에 출가하였다. 1811년 병으로 젊은 나이에 입적하지만 아암은 대둔사가 자랑하는 12대 강사로서 학문적으로 위대한 업적을 남긴 승려이다. 아암이 입적한 후 문도들이 엮은 시문집으로 『아암집』이 있다. 현재 전해지고 있는 『아암집』은 3권 1책으로 1920년 신문관에서 발간한 활자본으로 당시 유생들과 시문을 통해 주고받은 그의 유불관에 대한 입장을 알 수 있다.

  아암은 다산을 통해 『주역』을 배웠으며 아암이라는 별호도 다산으로 인해 얻은 것이다. 「아암장공탑명」에 “아암의 성품이 매우 고집스러워 내가 ‘그대가 어린아이처럼 유순해질 수 있겠는가?’ 또한 「연파대사비명」에 “그대의 성품이 강건하니 부드러움을 어린아이같이 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자 이에 혜장이 호를 아암이라 했다고 기록되어있다. 이 모두 다산이 지은 것이다. 한번은 다산이 대둔사에서 아암을 비방하는 것을 들었던 모양이다. 다산은 아암이 교만하다는 평을 받고있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봉황새와 같은 현자는 자신을 낮추고, 눈에 띄지 않게 날아가는 기러기와 같이 속세를 떠나 뜻을 고상히 하며 남의 비방을 받지 않도록 조심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다산은 아암의 성품이 호탕하고 솔직하여 그로 인해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것에 안타까워한 듯하다. 행여 그가 흠집이 나는 것을 걱정했던 모양이다.

  승려의 차생활은 불가의 오랜 전통으로 아암 역시 직접 차를 만들어 마셨다. 다산도 아암에게 차를 청하여 마셨다. 1805년 아암에게 차를 청하며 보낸 글 「혜장에게 차를 청하며 부치다」라는 편지에 아암이 답장을 한 글이다.

  “아끼고 돌아보심에 과분한데, 편지로 안부를 물으시고 필묵까지 내리시니,

  보배로워 아껴 감상할 만합니다. 지극하고 감사한 마음 어찌할 수 없습니다.

  저는 그전처럼 게으르고 제멋대로 인지라 깊은 뜻에 부응할 길이 없습니다.

  늦은 차(茶)는 벌써 쇠었을까 염려됩니다. 다만 덖어 말리기가 잘 되면 삼가 받들어 올리 겠습니다.”

 

  답글로 보아 찻잎을 따는 시기가 늦은 듯, 자신의 게으른 성격을 탓하며 차가 잘 만들어지면 차를 보내겠다는 아암의 마음을 전하는 글이다. 다산이 선물로 필묵까지 보낸 것으로보아 차가 참으로 필요했던 모양이다.

  다산은 아암에게서 차를 구할 수 없어, 그의 제자 색성이 차를 부쳐준 것에 감사하는 시를 보내기도 한다. 다음은 『다산시문집』에 실린 시이다.

 

  “장공의 많은 제자들 중에 색성이 가장 기걸 하다네.

  화엄 교리를 이미 터득하고 두보의 시까지 배운다네.

  좋은 차도 꽤나 잘 만들어 심히 외로운 나그네를 위로한다네.”

 

  그들이 처음 만났을 때 다산은 44세 아암은 34세였다. 아암이 40세에 세상을 뜨기까지 그의 호탕함과 강직함은 유배온 다산에게 힘이 되었을 것이며 아암의 차는 다산의 답답한 마음을 진정시켜 주며 맑은 정신으로 학문에 정진 할수 있는 힘이 되었을 것이다.

 

 이창숙  원광대학교 초빙교수

 

※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은 격주 월요일자를 통해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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