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5 대한민국 농업 국치의 날
10.25 대한민국 농업 국치의 날
  • 김종회
  • 승인 2019.10.29 17: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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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10월25일은 대한민국 농업 국치(國恥)의 날이자 농업 포기 선언일이다.

 정부는 지난 25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정부서울청사에서 대외경제장관회의를 연 직후 “미래에 WTO 협상이 전개되는 경우 개도국 특혜를 주장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홍 부총리는 “쌀과 같은 우리 농업의 민감 분야는 최대한 보호할 수 있도록 유연성을 갖고 협상할 권리를 보유·행사한다는 전제 아래 이같이 결정했다”고 덧붙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경제성장을 이룬 국가들은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라”고 압박한 지 92일 만에 이뤄진 전격적인 백기투항이다.

 WTO 개도국 지위 포기 선언은 과정부터 결론까지 농업과 농촌·농민을 철저히 배제했으며 민족의 현재와 미래를 송두리째 미국의 손아귀에 바친 항복 선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정부의 경제정책 운영과 재정지출에 관한 사항 전반을 논의하는 회의체인 ‘경제관계장관회의’는 기재부장관이 주재하며 WTO 개도국 지위와 관련해서는 농식품부장관, 산업자원통상부장관 등이 참석했다.

 기재부와 산자부 장관은 부처의 특성상 대한민국 현실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높은 비중 등을 언급하며 미국과의 통상마찰을 줄이기 위한 방편으로 개도국 지위 포기에 방점을 찍을 수밖에 없었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문제는 농식품부이다. 농업·농촌 관련 업무 전반을 관장하고 농촌을 진흥해야 할 농식품부는 개도국 지위 존폐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단 한 번도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한 사실이 직간접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타 부처를 설득할 의지와 실력이 전무했으며 대한민국 농업을 반드시 지키고야 말겠다는 결사항전의 자세를 찾아볼 수 없었다.

 더구나 농식품부는 개도국 지위를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더라도 우리 농업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는 방어벽을 치는데 급급했다. 심지어 개도국 지위 상실시 예상되는 피해와 대책을 묻자 “현재 유효한 WTO 농업협상이 진행되지 않아 영향분석이 어렵다”는 무책임하고 무사안일함의 끝판을 보였다.

 거대한 괴물이 달려드는 상황, 임전무퇴와 당찬 기백으로 임해도 수성을 장담할 수 없는 현실에서 농식품부는 잔뜩 겁먹은 채 엉덩이를 뒤로 빼고 줄행랑을 칠 준비에 여념이 없었으니 오늘의 결과는 이미 예고된 수순이었다.

 장관이 직을 걸고 버텼다면 농업피해에 대한 후속대책이 전무한 ‘무대책 개도국 포기 선언’은 없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다른 부처는 용서할 수 있을지라도, 농업 전반의 업무를 관장하고 진흥해야 할 농식품부 장관은 대한민국 농업을 절단 낼 거대한 괴물 앞에 빗장을 풀고 대문을 활짝 열어준 데 대해 책임을 지고 스스로 사퇴했어야 옳다. 그것이 수천 년 동안 이 땅과 민족혼을 지켜온 농업과 농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며 허울뿐인 부처 수장의 품격이다.

 자동차 등 산업계의 이익을 위해 농업을 희생양으로 삼은 WTO 개도국 지위 포기선언이 가져올 파장은 모골이 송연할 만큼 두렵다. 한국농업의 특수성을 인정받아 고율관세를 유지하고 있는 핵심품목의 피해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농업전문가들은 “WTO 농업협상 개시 여부가 불투명할 뿐이지 협상이 진행되면 한국 농업은 돌이킬 수 없는 치명상을 입을 것”이라고 우려한다. 쌀 관세율은 현행 513%에서 393%로 조정되며 고추관세는 270%에서 207%, 마늘은 360%에서 276%로 낮아질 것이다. 농업보조총액(AMS)을 연간 1조4,900억원까지 쓸 수 있지만, 이 한도가 반 토막 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한국 농업은 거대한 쓰나미 앞에 놓인 촛불신세다. 농업인을 달래기 위한 대국민 사과와 동시에 국가 전체예산 대비 농업예산 비중 4%대 증액, 공익형 직불제 예산 3조원 편성 등이 신속하게 이뤄져야 한다. 대한민국이 오늘날 선진국의 문턱에 진입할 수 있었던 자양분은 농업과 농민의 희생과 피땀이다. 그 희생으로 허리가 굽어버린 농민에게 대한민국 정부가 제시해야 할 최소한의 처방전은 농업예산 비중 확대와 공익형 직불제 예산 증액이다.

 김종회<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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