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삼겹살 먹을 때가 아닙니다”
“지금 삼겹살 먹을 때가 아닙니다”
  • 김창곤
  • 승인 2019.10.28 16: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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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망을 딛고 새 도약 희망을 주려 했다. 지난 24일 ‘군산형 일자리 상생 협약식’에서 문재인 대통령 연설부터 그랬다. 대통령은 열 번 훨씬 넘게 ‘상생’을 말했다. 그는 “지역의 신산업 육성 의지, 노사민정(勞使民政) 대타협, 그리고 정부 지원이 더해져 군산은 전기차 메카로 우뚝 서게 될 것”이라고 외쳤다.

 일자리 상생 협약은 국내 여섯 번째였지만 지역 양대 노총 참여는 처음이었다. 노사 모두와 지역 각계가 참여하는 ‘전기차 클러스터 상생 협의회’의 기치부터 ‘상생’이었다. 공동교섭으로 사업장 규모별 적정 임금 가이드라인을 만든 뒤 기업별 재협상으로 임금을 확정한다는 것이다. 적정 임금은 전북 중견-중소기업 평균 수준을 말했다.

 협약엔 노사 갈등이 생겨도 5년 동안은 상생 협의회 조정에 따른다는 약속도 담았다. 완성차-부품업체들이 원-하청에서 수평 협력하면서 노동자 대표를 이사로 두는 등 투명한 경영을 통해 상생을 실현한다는 설명이었다. 문 대통령은 새만금 신항과 국제공항 등 인프라를 떠올리며 군산을 ‘전기차 육성을 위한 최적 장소’로 꼽았다. “군산이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 전기차 시장의 주인공이 될 것”이라고 기대를 부풀렸다.

 군산에 울려 퍼진 상생이란 말이 많은 것을 생각게 했다. 현대중공업 가동 중단과 GM 철수로 경제가 뿌리째 흔들리면서 극심한 고통을 겪어온 군산이었다. 세계 시장 결정이었지만 두 기업은 ‘먹튀’로 전락했다. 반기업-친노동 세력이 권력 복판으로 진입하면서 이 나라 대기업들은 ‘갑질 주범’이 됐다. 상생은 평화와 협력, 아름다운 공존을 떠올리지만 ‘사회적 책임’이란 말과 함께 기업을 옥죄어왔다.

 자유 시장경제는 사적 소유와 자발적 선택, 간섭하지 않는 작은 정부의 원리로 구성된다. 군산 경제는 공공 지원 없이 호전될 수 없다. 폐허를 딛고 기업이 일어서도록 후원하되 개입과 간섭은 최소화해야 한다. 기업 존립 근거는 이익이다. 이익을 쫓으며 경쟁력을 높이고 고용을 통해 기본 책무를 완수한다.

 전북은 금세기 기업 도시로 나아갈 기회를 여러 번 놓쳤다. 부안은 한수원 유치와 수천억원의 정부 지원금 후원을 외면했다. 군민들이 ‘방폐장이 기형아를 낳는다’는 주장에 따랐다. 몇 해 전 LG CNS가 새만금 76㏊에 세우려던 스마트팜 설비 및 제어 기술 개발·실증·생산 기지도 철회됐다. 농민단체가 ‘대기업 탐욕’으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김승환 교육감은 삼성이 후원하는 취약 계층 중학생 방학 캠프에 대학생들이 참여치 못하게 했다. 그는 “삼성의 급선무는 삼성 때문에 고통을 겪으며 살아가는 분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일”이라며 “삼성전자에 학생을 취직시키지 말라고 특성화고에 지시해놨다”고 자랑처럼 밝혔다. 그런 그를 유권자들은 3선까지 당선시켰다.

 여론은 늘 ‘정의로운 분배’ 편이었다. 전주시는 중소 상인 보호를 내세워 종합경기장 재개발을 수년간 보류했다. 큰 비용이 드는 호텔 컨벤션 등을 짓기 위해 2012년 민간사업자로 롯데쇼핑을 선정했으나 후임 시장이 재벌 특혜라며 시 재정사업으로 변경했다. 최근 다시 롯데를 찾았으나 적기를 놓쳤다는 비판을 받는다. 전주지법 이전을 앞두고 진즉부터 덕진 구도심 공동화가 걱정됐다.

 “지금이 삼겹살 먹을 때입니까. 일을 해야죠.” GM 군산공장을 인수해 생산라인을 구축중인 ㈜명신의 간부가 주말 TV좌담회에서 전한 이 회사 노조 대표 말이었다. 체육대회 삼겹살 파티보다 회사 안착이 절박하다는 노조 위기감을 고스란히 전하고 있었다. 민노총 군산시지부는 ‘상부’ 뜻에 따르지 않고 이번 협약에 참여했다. GM 실직 노동자들에게 일자리는 목숨과 같았다. 어쩌면 ‘상생’이니 ‘새 산업 생태계’란 구호부터 사치였다. 그 협약이 첫 걸음을 뗐다.

 김창곤<前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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