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크아트작가, 무엇으로 사는가?
정크아트작가, 무엇으로 사는가?
  • 박인선
  • 승인 2019.10.27 16: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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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쓰레기 배출량은 하루 약 1Kg이라는 통계가 있다. 이웃에 사는 칠순이 넘은 문구점 사장은 한 달 내내 쓰레기 종량제100ℓ봉투 한 개를 소비한다고 한다. 문구점이다 보니 쓰레기양은 일반 가정집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이 배출된다. 그런 쓰레기양을 분리수거로 해결한다. 틈나는 대로 박스에 붙은 비닐도 떼어내고 종류별로 분리한다. 분리수거는 습관이 되었다.

 문구점 밖의 작은 마당에는 이렇게 모아놓은 재활용 용품들이 쌓여있다. 이런 과정이 달인 수준이다. 이렇게 나오는 재활용 자재들은 폐지 수집하는 사람들에게 공짜로 나눠준다. 함께 나누니 이웃사랑도 실천한다. 습관화된 생활은 허투루 지나지 않는다. 이런 생활은 알게 모르게 귀감이다. 환경전도사가 따로 없다.

 지금은 정크아트작가라는 이름이 붙긴 하였지만 지난 시간의 생활은 반환경적인 부분이 많았다. 습관처럼 되어버린 일회용 사용은 좀처럼 벗어나기 힘든 부분이었다. 작업을 생각하다 접한 폐기물과의 인연은 조금씩 환경에 대한 관심을 불러냈다. 계기는 이렇게 찾아들었고 어쩌다 보니 정크아트 작가가 된 샘이다. 환경이라는 문제를 인식한 것도 나중의 일이었다.

 문명의 고도화 속에 환경은 양날의 칼과 같은 양상이다. 어느 것 하나 비켜 갈 수 없는 부분이기에 인류의 존속도 환경에 달려있다. 어느 동물학자가 지금의 상태라면 호모샤피언스의 종말이라는 위험한 신호가 보인다고 했다. 지금의 현실이 그렇다. 자연계에 최고의 포식자이자 환경 파괴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가 플라스틱의 무분별한 사용과 일회용의 중독성에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환경오염이 최고조에 달한 결과이다. 산업과 경제가 맞물린 현상은 공익적 측면이 배제되었다. 개인의 사생활과 편리함을 억누를 수 없지만 예절을 배우면서 인성을 갖추듯이 환경에 대한 관심과 교육에 대한 사회적 역할의 필요성을 확대될 시점이다. 습관의 단절도 요구된다.

 숙명처럼 다가온 화두에서 비켜설 수 없는 그래서 받아들이고 함께 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이

 되었다. 작가자신도 습관화된 반환경적인 생활에서 벗어날 수 없었으니 위선의 굴레가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비난도 감수해야만 했었다. 예상할 수는 없었지만 작업을 통해 많이 순화되었다. 결과물들은 작품으로 남았다. 사회를 볼 수 있는 안목도 언제부턴가 조금씩 다가왔다. 인간성 회복이다.

 정크아트를 통해 작가의 삶도 180도 바꿔주는 계기가 되었다. 무지함의 시간도 어느새 환경이라는 화두에서 떼려야 뗄 수 없다. 운명처럼 삶의 유일한 통로가 되었다. 공감이라는 관객들과의 마주침은 때로는 불같은 에너지를 발산하게 한다. 조금이라도 귀 기울이려는 노력이 의미 있는 작업이고 삶이 되었다.

 작업은 예술의 실천이다. ‘예술은 동사다’라고 했던 어느 민중작가의 말처럼 역동성과 실천성의 결과물이다. 작가는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답은 ‘사회적 공감대’를 만들어 가는 일이다.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절실하게 요구 되는 목표에서 더욱 목마름이고 간절함이다. 작업은 그래서 더욱 가열차게 계속 될 것이다. 사회를 움직이는 작은 불씨로 발화하기를 바라면서.

 

박인선(정크아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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