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사랑한 일본 화가의 손
한국을 사랑한 일본 화가의 손
  • 나카무라 미코
  • 승인 2019.10.28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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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가의 이름은 ‘무라나가 아루오’. 삼십 년 전에 처음으로 한국에 왔다. 그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전통 ‘한옥’을 몹시 사랑했다. 그는 사람의 손을, 손으로 만든 것을 좋아했다. 머물렀던 한옥 주인이 장작을 패는 모습을 보면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단다.

  부인과 함께 만든 입체작품 ‘꼴라주 양사재 (養士齋)’는 나무와 흙, 한지로 된 한옥의 맛을 살리려고 했다. 대문에는 서예가인 부인이 손수 쓴 입춘첩과 시문(詩文)들이 붙어있고 지붕 위에는 추억을 찾는 듯이 새가 뒤를 돌아본다. 외국인들이 자주 오는 명소답게 영어로 된 편액이 달려있다. 작품의 대문을 살짝 열면 화가 부부와 한옥 주인 셋이 나란히 웃는다. 한옥 작품에 어울리는 재료를 찾느라 종이 커피 필터를 사용 후 말려서 쓰기도 하며 고심을 했단다. 부부가 머리를 짜내면서 즐겁게 작품을 만들던 모습이 눈에 보이는 것 같다.

  무라나가 화백은 일본화 집안에서 태어나 철이 들 무렵부터 자연 소재에 익숙했지만 화가로서의 생활을 두려워 한 탓에 몸에 엄격함이 숨어들어 어린이다운 그림을 그리지 못했다고 한다. 일본 나가사키(長崎)에 살면서 ‘인생을 위해 예술이 있는 게 아니라, 만들기 위해 인생이 있다. 즉 예술을 위한 인생’ 을 보냈다고 한다. 작품들은 바로 그의 인생이다.

  16세기 스페인이나 포르투갈, 유럽, 동남아시아에서 온 물건이나 사람들을 일본어로 ‘난반(南?)’이라고 한다. 나가사키에는 지금도 그 시대의 분위기가 남아있다. 난반인들이 상륙했을 때, 손에 들었을 거라는 무기를 악기로 바꾸어 다루는 모습을 무라나가 화백은 많이 그렸다, 전쟁 말기에 원자폭탄이 떨어져 수많은 어린 애들이 희생이 된 나가사키에서….

  무라나가 화백은 한국 각지에서 사람을 만나 문화를 즐겼다. 전주에서 맺은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며 자주 찾아오고 만년에는 병마에 시달리면서도 우정의 손을 놓지 않았다. 화백이 걸었던 길에 우리도 서서 그의 뜻을 이어가고 싶다.

  ‘무라나가 작품 전시회’를 하자고 마음을 모았던 여름부터 갑자기 한·일 양국 관계가 나빠졌다. 행정부가 행하는 문화 교류행사는 여기저기서 취소가 잇 다르고 몇 백만 명이 왕래하던 관광객들도 급속히 줄어들었다. 자극적인 말로 관심을 끌려는 매스컴이나 SNS등이 사람들의 가슴에 가시를 박았다.

  이런 상황에서 전시회를 하냐고 마음이 흔들린 나에게 일본인 친구들은 힘을 보태주겠다고 하고, 한국인 친구들은 당연히 해야 한다고 웃었다.

  국가 사이가 좋을 때나 어려울 때나 상관없이, 우리 시민들은 서로를 존중하며 이웃으로 어울린다면 삶의 즐거움을 더 넓힐 수 있고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 낼 수도 있을 것이다.

  무라나가 화백은 떠났지만 그의 부인 요우코씨와 함께 유작전을 서두르고 있다. 여름 규슈 ‘전시회’에 이어, 가을에 여기 전주에서 그림을 펼치고자 한다.

  전시회 주제는 ‘나가사키의 바람을 타고 전주에’ 이다. 화백의 혼이 전주로 날아온다.

  10월30일부터 서학동사진관에서 열릴 작품전시회는 ‘한국사랑’을 품은 무라나가 화백이 걸었던 길이 보인다. 그의 손을 잡고 우리 시민들이 그 길을 오가며 새로운 만남과 기쁨을 나누는 장소가 될 것이다.

한일문화교류센터 사무국장 나카무라 미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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