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체육 100년,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한국 체육 100년,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 이흥래
  • 승인 2019.10.24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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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00회 전국 체전이 이달 초 서울에서 열렸다. 한국 근대 스포츠의 한 세기를 기념하고 새로운 세기의 출발을 다짐하는 대제전이었지만 서울에서의 체전 개최는 영 엉망이었다. 올림픽과 월드컵에 익숙한 대도시 사람들 눈에 시골학교 운동회 수준의 전국 체전은 한마디로 너희들만의 잔치에 불과했다. BTS가 불참한 때문인지 대통령이 참석한 대규모 개회식이었지만 관중석은 곳곳이 비어 있었고 관중들은 하품만 하기 일쑤였다. 더구나 인구 천만의 대도시지만 대회를 개최할 만한 시설도 부족해 자전거는 강원도 양양, 수영은 경상북도 김천 등등으로 장소가 분산됐다. 또 서울에서 치러진 경기들도 대회장이 비좁거나 홍보도 잘 안돼 곳곳에서 준비부족을 지적하는 불평들이 많았다. 배구는 상당한 인기스포츠여서 관중이 몰렸지만, 어느 학교의 비좁은 강당에서 열려 관계자나 관중들이 제대로 들어가기조차 어려웠다. 지난해 우리 전북에서 열렸던 99회 체전과 비교하면 천양지차였다. 차제에 전국 체전은 대도시보다는 지방에서만 개최하는 것이 여러모로 나을 것 같다.

 이번 100회 전국 체전에서 전북은 충남과 광주에 이어 종합 11위를 차지했다. 개최지의 이점이 있었지만 한해 전 종합 3위에 올랐던 것을 생각하면 대단히 서글픈 성적이다. 사실 인구나 도세로 볼 때 전북은 그 정도라는 얘기도 많다. 하지만 충북의 경우 인구가 훨씬 많은 대구나 부산을 제치고 6위를 차지한 걸 보면 그 말에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이번 체전에서 전북은 배드민턴과 육상 필드가 종합 1위에 올랐고 자전거와 요트가 종합 2위, 체조가 3위를 차지했다. 전북은 그동안 이들 종목에다 레슬링, 소프트 테니스, 핸드볼, 펜싱 등을 포함한 10여개 종목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왔다. 지도자들의 열정과 선수들의 투지 그리고 초중고에서 실업팀으로 이어지는 시스템이 좋은 성적의 원천으로 꼽힌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좋은 성적을 내고 말겠다는 우승 DNA가 모두에게 공유되어야 한다. 자전거의 경우 최근 10여년 사이에 종합 4위 이하로 내려간 적이 없다. 지금도 순창에서 타계한 고 정인영 선생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역도에는 완전 문외한이었지만 전병관을 발굴했고, 그가 지도했던 순창의 역도는 당시 전국 최고였다. 스포츠는 그야말로 사람이 하는 일이다. 선수 말고 스카웃의 대상이 되는 지도자도 가져보자. 그 지도자가 선수를 키우고 선수는 성적을 올리는 것이다.

 육상과 수영을 세분화해서 세다보면 전국체전은 무려 48개 종목에서 경기를 벌인다. 능력이 있어서 이들 전 종목을 육성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주변에 선수가 없어 체전 때만 급조해서 출전하는 종목도 있다. 돈은 돈대로 들면서 0점 맞는 일도 많다. 그러다 보니 한때 30여개 종목만 의무적으로 출전하고 나머지 종목은 선택적으로 참가하는 쿼터제의 도입이 고려된 적이 있다. 우리 전라북도를 비롯한 도세가 빈약한 지역의 입장에서는 솔직히 구미가 당기는 방안이다. 이제 전국체전도 올림픽이나 아시안 게임처럼 개선할 필요가 있다. 자신들이 잘할 수 있는 종목은 엘리트 종목으로 집중 육성하고 나머지는 생활체육으로 육성하는 발상의 전환이 시급하다. 물론 이같은 방안이 일부 종목 육성으로만 치우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그렇다면 일정기간 투자되는 훈련 예산과 체전성적을 감안한 출전자격제라도 도입한다면 파급 효과는 더 커질 수 있을 것이다. 전국체전의 슬림화나 다이어트가 시급하다.

 지방자치단체장의 스포츠 단체장 겸직을 금지함에 따라 내년 1월 25일까지는 자치단체마다 새로운 체육회장의 선출이 이뤄져야 한다. 그동안 한국 체육은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과 육성에 따라 발전해 왔다. 또 지방체육도 지방자치단체 산하에 편재되어 있었기 때문에 버텨올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단체장의 겸직금지로 인해 그 지원과 육성이 축소되거나 다른 형태로 변질할 가능성도 크다. 쉽게 말해서 단체장과 말이 통하지 않는 체육단체장이 무슨 예산으로 체육정책을 펴나갈 수 있느냐는 말이다. 특히 모든 부문이 마찬가지지만 스포츠는 그 지원예산의 다과에 따라 산출되는 성과는 더욱 벌어지는 부문이다. 따라서 지방체육의 자체적인 존립이 가능한 제도적 지원체계 마련이 시급하다. 이같은 지방 체육계의 자생력 강화방안이 마련되지 못한다면 지역의 스포츠 발전은 백년하청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이와 함께 지역 스포츠 단체들도 자립과 자활을 위한 심도있는 노력을 더욱 강화해야 할 것이다. 이처럼 한국 체육의 두번째 세기는 시작부터 수많은 과제와 도전에 직면해 있다. 패러다임의 전환이 시급한 시점이다.

 이흥래<전라북도 체육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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