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격한 사랑의 교육, 엄이자(嚴而慈)
엄격한 사랑의 교육, 엄이자(嚴而慈)
  • 김판용
  • 승인 2019.10.24 14: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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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선조들은 교육이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으로 파악했다. 그러니까 문제를 풀고 경쟁을 하는 것보다 사람다운 행실을 제대로 해야 한다고 믿었던 것이다. 사실 그것은 가장 우선돼야할 실력이다. 그냥 배워서 알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걸 일상에서 실천하도록 했던 조상들의 교육은 매우 가치 있었다.

  물론 그 안에는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와 같은 봉건적 가치의 지배라는 한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또 사람다움이란 이념도 다분히 순종과 복종, 그리고 관습적 허례 중심이었으니 그 교육이 무작정 옳다고 보기도 어렵다. 그러나 한 학생도 놓치지 않으면서 인성을 우선한 서당식(書堂式) 교육의 장점은 우리가 버려서는 안된다.

  필자가 초임발령지였던 고창고등학교의 교무실에 ‘엄이자(嚴而慈)’라는 액자가 걸려 있었다. 유명한 서예가 안태회 선생의 글씨로 누렇게 종이가 변색될 정도의 세월의 무게를 지니며 큰 울림으로 다가 왔던 기억이 난다. 교장선생님이 안 계실 때도 가끔 그 글씨를 보고 싶어서 들르곤 했었다.

  엄이자(嚴而慈)는 서당 훈장식의 교육이다. 엄(嚴)은 엄격함을 이른다. 이 엄격함은 지켜야 할 것을 지켜야 한다는 원칙인데, 봉건사회에서는 강압적이었다. 안 들으면 폭력으로 대응했던 것도 시실이다. 오늘날은 구성원 간의 규칙을 세우고, 반드시 서로 지켜가야 하는 것으로 재해석해야 할 것이다.

  자(慈)는 사랑이다. 아무리 내 자식이 귀하고,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만큼 예쁠지라도 지킬 것을 지키도록 해야 한다. 예전 사람들이라고 자식 사랑이 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너무 사랑스럽기에 엄격했을 것이다. 엄격함은 사랑을 위한 기반이다. 위에서 말하는 자(慈)는 위에서 아래로 내리는 사랑이다. 배려와 부합할 것이다. 아이들의 아픔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그들 편에서 생각하는 것이 ‘자(慈)’이다.

  낡은 가치라고 여길지 모르지만 지금의 교육의 상황에 ‘엄이자(嚴而慈)’라는 액자를 다시 마음에 걸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교권을 보호하겠다는 위원회가 설치되고 조례로 나왔다. 아니 ’가르칠 권리‘를 주장하다니 이게 말이 되는가? 당연히 가르쳐야 하고, 이건 의무여야 한다. 권리일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아이러니하게 돌아가고 있다.

  교육자의 권위가 실추는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권위적이어서는 안 되지만 권위가 없다면 감동과 감화를 전제로 하는 교육의 성과는 기대하기 어렵다. 학생들에게 지킬 수 있는 원칙을 제시하고, 준수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학부모도 현재의 감정에 의한 자기 자식 중심의 시각에서 벗어나 큰 틀로 학교를 봐야 한다. 지금 논의되고 있는 학교 자치도 그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그러려면 먼저 교사 자신이 엄격해야 한다. 자신에게는 너그러우면서 남에게만 엄격해서는 절대로 따라오지 않는다. 교육자 스스로 한발 먼저 나가서 끌고 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자신에게 엄격하려면 전문성과 도덕성, 그리고 열정을 가져야 한다. 실력 있으면 자신이 있고, 떳떳하면 설득력이 있다,

  우리가 가르치는 학생들은 형제자매가 하나이거나 거의 없다. 옛날 대가족 제도 속에서 서로에게 배우고 깨우쳐서 사람의 도리를 파악하던 세대와는 다르다. 또 부모나 가족으로부터 엄청난 사랑을 받으면서 자랐다. 티 없이 맑고 순수하지만 남을 배려하고, 공공의 가치를 추구하는 힘이 약할 수밖에 없다. 그들에게 원칙을 지키도록 해야 한다. 학생을 다그칠 수 없는 시대이다. 교육자 스스로의 엄격함으로 권위를 세우고 따라오도록 해야 한다.

  원칙을 강조하면 열정적이지 못한 경우가 많다. 흔히 ‘복지부동(服地不動)’이라는 말이 있듯이 원칙을 세워 나간다는 것을 자신이나, 남에 의한 제재로 파악하기도 한다. 그러나 교육에 열정이 없다면 아무 열매도 거둘 수 없다. 옛날 우리 선배들이 학력이 부족한 학생들을 일과 후까지 남겨놓고 가르쳤던 진정한 의미의 ‘방과후학습’은 바로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무조건적 희생만이 열정의 표현은 아니다. 스스로 가르치는 일에 고민하고, 학생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정책을 세워 실천하는 일은 가장 생활화된 열정적인 모습이다. 우리가 가르치는 학생들의 태도를 문제 삼기 전에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를 따져보고. 이에 대처하는 자세가 바로 진정한 열정이라고 믿는다.

  문득 가을이다. 한해의 농사를 수확하는 계절에 우리 1년의 교육도 평가를 할 시기이다. 교육과정을 정리하는 학교 축제도 열리고 있다. 또 학교마다 내년 교육과정을 위한 준비도 서서히 해 나갈 것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 선조들의 교육 철학이었던 ‘엄이자(嚴而慈)’의 자세를 가다듬어, 지킬 것을 지키면서도 열정으로 활기 넘치는 학교로 나갔으면 좋겠다.

 김 판 용(시인·지사중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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