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기억을 소환하다…황준 시인 ‘기억의 바다’
우리의 기억을 소환하다…황준 시인 ‘기억의 바다’
  • 김미진 기자
  • 승인 2019.10.23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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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지금부터 우리가 이야기를 시작한다면 당신은 어떤 기억들을 쏟아낼 것인가?

 일 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르다. 아니, 일 년까지 갈 필요도 없다. 하루 전의 나와 현재의 나 역시도 다른 모습일테니 말이다.

 우리가 잊고 지냈던 무엇인가가 문득 떠오르는 시간이나 잊고 싶기만 했던 기억이 끈질기게 삶을 뒤따라오는 시간까지도 소중하게 느껴야만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황준 시인의 첫 시집 ‘기억의 바다(미네르바·9,000원)’에는 기억에 관한 주제를 담은 시들이 가득 담겨있다.

  그 기억은 지극히 개인적인 시인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주변인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또한 지우고 싶은 어떠한 사건의 충격이기도 하며, 꼭 기억해야만 하는 우리 사회의 단면이기도 하다.

 시인은 시를 고통스럽게 써내려가고 있지만, 독자는 그의 시를 편하게 읽어내려갈 수 있다. 그의 시가 어렵지 않고, 알아볼 만한 까닭이다. 이는 소박하고 쉬운 언어로 쓰여있기 때문인데, 이희찬 시인은 “그의 시에는 다른 어떤 시인들의 시에서 발견되는 허세나 거짓이 없다”고 추천했다.

 황 시인은 ‘첫눈’이라는 이미지를 사용해 만남의 소중함을 노래한다. 한 존재가 다른 존재를 받아들이는 일, 아무리 사소한 만남이라도 운명을 결정짓는 일생일대의 큰 사건이 될 수 있음을 일러주고 있다.

 때로는 퇴직한 교사가 되어 판서한 ‘칠판’을 지운다.

 “내가 썼던 칠판의 글씨들을 지운다/ 삐뚤어진 역사를 지우고/ 현대사를 지우고 / 잉글랜드를 지우고/ 힌두교를 지우고 모든 종교들을 지운다/ 인류의 전쟁을 지우고/ 마지막에는/ 내 육신을 지우고 내 영혼을 지운다”「칠판」중에서

 하지만 마지막 연의 “칠판 글씨들/ 하늘의 별처럼 / 내 머리에 가득하다”라는 구절에서 독자는 짐작할 수 있다. 무엇인가를 지우는 행위로 인해 우리의 기억이 더욱 또렷해 진다는 것을 말이다.

 표제작인 ‘기억의 바다’는 세월호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 시인은 많은 생명들이 죽은 그 바다를 ‘기억의 바다’라고 명명하며, 독자들로 하여금 성찰의 시간을 선물한다. 그리고는 기억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한다.

 ‘참새 이야기’에서 참새들이 모여있는 모습을 보고는 무뎌져 버린 공동체의 모습을 한탄하고, 더 나은 농민들의 삶을 위해 투쟁하다 죽은 백남기 농민의 유가족을 기억해낸다.

황정산 문학평론가는 “황준 시인의 시는 소박하고 쉬운 언어로 쓰여 있다. 하지만 결코 유치하거나 투박하지 않다”면서 “소박함 속에 들어 있는 섬세한 감각과 쉬운 언어 속에 들어 있는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그의 시의 큰 특징이고 장점이다”고 평했다.

시인은 전주 출생으로 1988년 시 시계 동인 활동을 시작했다. 동인 시집 ‘우리는 노래하기 시작하였다’에 참여했다.

 김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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