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배낭여행]#8. 이스탄불에서 온 편지
[예술배낭여행]#8. 이스탄불에서 온 편지
  • 서병조
  • 승인 2019.10.22 17: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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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방인의 안식처 ‘귈하네 공원에서’

 과거로 미래를 알 수 있다고 했던가? 터키에는 감각적이고 아름다운 유적지가 많다. 문득 터키의 역사가 궁금해 아침 일찍 박물관으로 향했다. 박물관 아래에는 시민들의 안식처로 사랑받는 귈하네 공원이 마주하고 있다. 화려하진 않지만 여유가 느껴지는 곳이다. 가을 달밤에 부는 곳인 추야월을 단소로 연주했다. 나름 운치가 있다. 대금으로는 산조를, 내친김에 소금으로 노들강변, 천안삼거리 등 경기민요도 연주했다.

 여러 마리의 개들이 짖어대기 시작한다. 개들은 대나무 악기 소리에 민감하다. 우스갯소리지만, 귀신 소리를 듣는 개들은 귀신소리와 대금소리가 비슷해서 짖어댄다는 설이 있다.

 이스탄불의 대부분은 이국적이지만 묘하게 이곳 귈하네공원은 한국의 여느 공원같은 분위기로 친근하다. 울창한 플라타너스 숲, 졸졸졸 물이 떨어지는 작은 분수대, 초록초록한 잔디밭위에 사람들의 종종종 대화소리. 내 연주를 듣기 위해 굳이 모이기보단 자연스레 느끼고 즐기는 분위기에 그동안 혼자 감당해야 하는 버스킹의 부담감을 잠시 내려놓고 모처럼 연주에만 몰입했다. 홀로 여행을 떠난지 며칠만의 평온이다.

 # 이스티크랄 거리를 거닐다.

 버스킹으로 매일 일정을 보내다 문득 이곳의 삶의 현장이 궁금했다. 그래서 향한 곳이 이스티크랄 거리로 명동거리 같은 곳이다. 탁심 광장에서 이스티크랄 거리로 걷기 시작했다. 참으로 많은 사람들과 트램, 튀넬, 버스가 섞여 달리고 있다. 인파의 물결 속에서 귀에 익은 음악소리가 들려온다. 인디언 복장을 한 거리의 악사가 고엽을 연주하고 있었다. 시끄럽고 그 많은 인파속에서도 자연스럽게 연주를 이어갔다. 그 집중력에 놀라울 따름이다. 연주하는 이들은 남미인디언들로 주로 팝송을 이어갔다. 한참을 서성이며 감상하다 같은 악사로서 두둑한 관람료를 지불했다.

 # 터키아리랑 위스퀴다르

 이스탄불의 교통편에 익숙해지니 이동이 자유로워졌다. 오늘의 행선지는 위스퀴다르이다. 터키민요인 위스퀴다르는 작은 마을 위스퀴다르에 살고 있던 아가씨가 한 총각을 사모하는 애틋한 연가이다. 말하자면 구전되어온 터키식 아리랑인 셈이다. 사랑하는 이를 멀리 떠나보내면서도 잡지 못하는 여인의 심정을 노래했다. 가사를 듣다보면 김소월의 진달래꽃이 떠오른다. 한국과 터키는 정서적인 면이 오묘하게 닮아있다.

 위스퀴다르는 아시아 지구의 끝부분에 자리하고 있다. 그곳을 건너기 위해선 보스포러스 해협을 건너야 한다. 이스탄불에서 버스킹을 하며 위스퀴다르를 많이 연주했지만, 막상 위스퀴다르를 향하는 여객선에서 연주하는 건 특별했다. 감상에 취했던 만큼 선상버스킹은 많은 박수로 화답을 받았다.

 위스퀴다르에 도착하니 자미(이슬람 사원)에서 예배를 알리는 아잔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에 끌려 나도 모르게 자미로 향했다. 터키의 전통음악을 제대로 들어보지는 못했지만, 나에겐 터키를 떠올리게 하는 음악은 아잔 소리였다. 우리의 전통음악인 시조와 비슷하기도 하고, 서도민요(이북민요)와 비슷한 조름목 창법을 구사하는 듯 들리기도 한다. 기분에 따라서 빠르게 불면 경쾌한 듯 하고, 느리게 불면 한없이 애잔해진다. 그동안은 주로 삼각대를 이용해 혼자 연주하는 장면을 촬영했는데, 이곳에서는 촬영을 돕겠다 지원해주는 사람이 많았다. 단 몇 곡을 듣고 나서 나에게 호감을 표하는 음악의 힘은 참으로 대단하다 생각했지만, 경건한 사원에서는 오래 연주할 수는 없었다. 위스퀴다르에서 위스퀴다르라니~ 돌아가는 길에 마주한 석양에 물든 이스탄불의 모습은 아마도 이 벅참과 함께 오래 기억될 것이다.

 

 # 버스킹을 마무리하며?

 지나고 나면 한순간이라 했던가? 이스탄불에서의 8일은 허무할 만큼 빨리 지나가 버렸다. 한국에 온 지금이야말로 이스탄불을 여행하는 것 같다. 그때 미처 느끼지 못한 감정들이 문득문득 느껴지기 때문이다. 혼자서 일정에 맞춰 버스킹을 잘 마무리했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아쉬움이 쌓여갔다.

 호기심 많은 국악기로 여러 음악을 나열했을뿐 진정한 그들과의 대화가 부족했다. 모든 것을 연주에만 포커스를 맞춰 준비한 것이 실수였다. 내가 가져올 소중한 것은 공연 이후의 그들과의 대화였다. 끝없이 이어지는 대화를 통해 그들의 궁금증과 나의 궁금증을 풀어가다 보면 더 소중한 것을 얻을 수 있지 않았을까. 가장 중요한 알맹이를 터키를 다녀온 지금에서야 느낀다. 그간 너무 형식에만 치우치지 않았나 반성해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적 감성과 시야를 넓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부족한 것을 채우기 위해서 떠난 여행이니 여행을 통해 비워진 만큼 앞으로 채워가야 할 숙제가 또 생긴 셈이다.<完>  

 글 = 서병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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