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계(牛溪) 성혼(成渾), 실천을 말하다
우계(牛溪) 성혼(成渾), 실천을 말하다
  • 장상록
  • 승인 2019.10.22 17: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계문화재단 성호경 이사장이 우계(牛溪) 성혼(成渾) 선생에 대한 원고청탁을 해주셨다. 부족한 내 역량으로 누가 될까 사양했지만 간곡한 말씀을 마냥 거절할 수만은 없어 수락을 하고 말았다.

  우계 성혼은 문묘(文廟)에 배향된 동방18현(東方十八賢)중 한 명으로 문묘는 프랑스의 위대한 영혼들이 잠들어 있는 판테온과 같은 공간이다. 그 중 14명이 조선시대 인물이다. 조선 임금이 27명인 것을 감안하면 문묘에 배향 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영광스러운 자리인지 가늠할 수 있다. 호남 출신은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가 유일하다.

  모든 역사는 현재의 역사이면서 동시에 과거와의 소통이 필요한 해석의 학문이다.

 역사를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로 정의하는 것도 그래서다. 문묘가 가지는 의미도 조선의 그것과 현재의 해석이 완벽히 부합할 수는 없다. 연장선상에서 노론 일당 전제가 확립된 후 문묘 배향은 정파적 이익을 대변한 결과로 폄훼되기도 한다. 자연스럽게 질문이 따른다.

  성혼은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진 인물일까.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우계 성혼과 율곡(栗谷) 이이(李珥)의 인연이다. 한 살 차이인 두 명현의 호는 모두 파주와 관련되어 있다. 차이가 있다면 파주가 우계에겐 외가이고 율곡에겐 친가라는 사실 정도다. 우계와 율곡은 일생을 서로에 대한 존경과 애정으로 보냈다. 사단칠정(四端七情)을 가지고 벌인 우율논변(牛栗論辨)조차 두 사람에겐 틀림과 비난의 대상이 아니었다.

  두 사람의 차이를 갈등과 대립의 대상으로 만든 것은 후학들이다. 두 사람은 달랐지만 서로의 향기를 사모했다.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 율곡이 현실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데 반해 우계는 산림의 처사로 남고자 했다. 그럼에도 둘은 서로를 끝까지 응원했다.

 선조 7년인 1574년 1월 22일자 실록에는 이런 기사가 나온다.

  승지 유전(柳琠) 등이 특지(特旨)로 성혼을 부르자고 계청(啓請)하자 왕이 이렇게 답한다. “내가 실은 그 사람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어려워한다.” 그러자 김우옹이 다시 이렇게 말한다. “그 사람은 학문이 있는 통명(通明)한 인재라고 들었습니다. 임금은 사람을 다 알고 난 다음에 부를 수는 없는 것이니, 사람들이 현명하다고 일컬으면 지성으로 만나려고 해야 하고 만나본 뒤 벼슬에 임명하여야 합니다.”

  조선 최초로 방계에서 왕위에 오른 선조는 매우 입체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영민함과 절제력을 보여줌으로써 국왕이 되었지만 방계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는 의심 많고 당대 누구보다 정치적 감각이 뛰어났다. 또한 자존심이 남달랐다.

  그런 선조가 스스로 어렵다 말한 인물이 바로 우계 성혼이었다.

  성혼은 학문적으로는 조광조(趙光祖)와 부친 성수침(成守琛)의 학문 경향을 계승하면서 퇴계와 율곡의 학문을 절충한 것으로 평가 받는다. 우계는 자신의 거취에 대해서는 퇴계에게 자문을 구했고 율곡이 ‘니탕개의 난’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반대파로부터 공격 받을 땐 앞장 서 율곡을 변호했다. 그의 학통은 외손자인 윤선거(尹宣擧)와 외증손자 윤증(尹拯)을 통해 소론(少論)의 사상적 원류가 된다. 노론이 주류가 된 조선사회에서 그는 독특한 존재가 된 것이다.

율곡은 생전에 자신과 우계를 이렇게 비교했다. “만약 견해(見解)의 우월을 논하자면 내가 약간 나을 것이나 행실이 돈독하고 확고한 것은 내가 따르지 못한다.”

  국왕 선조가 우계를 어려워했던 것도 율곡의 언급과 관계가 깊다. 우계는 깊은 성찰과 더불어 그 모든 것을 실천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현재 이 땅에는 정의를 외치며 불의를 꾸짖는 우국지사(憂國之士)들이 넘쳐난다. 문제는 외침이 아니라 실천이다.

  우계는 오늘 우리에게 물음을 던진다. 지식인이란 어떤 존재이고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그리고 이제 우리가 답할 차례다.

  사족, 원고를 마치기 전 성혼 선생을 좀 더 만나봐야겠다.

 장상록<예산군농업기술센터 농촌지도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